‘웹 하이라이터’에서 시작된 여정, 국가대표 AI 등극까지
10년 데이터, ‘정확한 출처’로 AI 검색 혁신 완성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혁신 동력을 책임지는 중견·중소·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내 산업 혁신 지표를 형성하고 경제 역동성 엔진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리스크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 글로벌 AI 검색 스타트업 라이너(Liner)가 국내 인공지능(AI) 생태계 핵심 플레이어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라이너는 SK텔레콤이 주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사업 정예팀으로 최종 선정되면서 국가적 차원의 AI 전략을 이끌어가는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한국형 AI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프로젝트다. SK텔레콤은 자체 개발한 AI 모델 'A.X.'를 기반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라이너를 비롯해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 게임 개발사 크래프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포티투닷 등 각 분야 최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컨소시엄 목표는 반도체부터 서비스, 데이터에 이르는 AI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풀스택(Full-Stack) AI'를 구현하는 것이다.
정예팀에서 라이너의 역할은 매우 전략적이다. 라이너는 AI 검색에 특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AI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각 현상(할루시네이션)을 최소화하고 파운데이션 모델 신뢰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예정이다. 라이너는 이를 위해 실사용 기반의 독점적 데이터셋을 제공하고 랭커 모델 기반의 정확도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며 문장 단위 신뢰도 검증 모듈을 설계하는 등 구체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라이너의 SKT 컨소시엄 합류는 스타트업이 보유한 특화 기술이 대기업의 막대한 자원과 인프라를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는 성공적인 협력 모델로 평가받는다. SK텔레콤이 이미 자체 AI 모델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했음에도 라이너를 영입한 것은 라이너가 지난 10년간 축적한 독점적 데이터와 이를 활용한 할루시네이션 최소화 기술이 대기업의 자체 역량만으로는 단기간 확보하기 어려운 '기술적 해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너의 기술력은 컨소시엄 전체 AI 모델 신뢰도를 결정짓는 핵심 부품(키 컴포넌트)으로 인정받으며 국내 AI 생태계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우 라이너 대표는 "수천만명 실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한 AI 기술력과 글로벌 서비스 운영 역량을 활용해 한국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국민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라이너의 혁신은 10년 전 지극히 아날로그적 행위인 '형광펜 칠하기'에서 시작됐다. 2015년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진우, 우찬민 공동창업자는 빌 게이츠를 롤모델로 삼으며 대학 시절부터 창업 동아리 '인사이더스'에서 꿈을 키웠다. 이들이 처음 개발한 서비스는 인터넷 페이지나 PDF 파일의 중요한 내용에 형광펜을 칠하고 메모를 남기는 '웹 하이라이터'였다.
창업 초기부터 라이너의 정체성은 명확했다. 바로 '글로벌 서비스'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프트웨어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공동창업자들은 직접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고객이 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웹 하이라이터'는 출시 하루 만에 500명이 다운로드했으며 4년간 꾸준한 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전 세계 150개 국가에서 사용자를 확보했다. 라이너는 이 시기에 이미 월 손익분기점(BEP)을 넘기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라이너는 이 웹 하이라이터 서비스를 통해 미래 AI 검색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이 될 독보적 자산을 축적했다. 사용자가 직접 ‘이 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형광펜을 칠한 데이터, 즉 '사람의 필터링을 거친 양질의 정보'를 10년 가까이 쌓아온 것이다.
2022년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하며 AI 시대 서막이 열리자 라이너 팀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챗GPT가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을 내놓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더 이상 긴 글을 전부 읽을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이너는 웹 하이라이터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양질의 데이터베이스가 AI의 고질적인 할루시네이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챗GPT와 같은 범용 LLM(거대언어모델)은 웹에 공개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그 과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까지 포함해 할루시네이션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라이너는 '우리가 정해주는 특정 문서에서 답을 찾으라'는 가이드를 주는 방식을 고안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기존 웹 하이라이터 서비스는 고품질의 문서를 찾는 일이었고 이후 도입된 추천 서비스는 고품질 문서를 개인에 맞게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양질의 문서를 찾고 랭킹 시스템을 만드는 라이너의 기술력은 LLM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챗GPT API가 공개되자마자 이를 활용한 검색 서비스를 시험해 본 라이너는 2023년 기존 하이라이팅 서비스를 AI 검색 기능으로 통합하며 글로벌 AI 검색 스타트업으로의 대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는 챗GPT 이후의 급격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지만 그 이면에는 10년간 쌓아온 독점적인 데이터라는 강력한 자산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이너 AI 검색 서비스 핵심 경쟁력은 '할루시네이션 최소화'에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때때로 사실과 다른, 그럴듯하지만 허구적인 답변을 내놓는 경향이 있는데 라이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장별 출처 제공'이라는 독보적인 기술을 내세운다. 사용자는 AI가 생성한 답변의 모든 문장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출처를 확인할 수 있어 직접 사실을 검증하고 답변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다.
라이너는 10년간 웹 하이라이터 서비스를 통해 축적한 '사람이 직접 중요하다고 선별한 하이라이팅 데이터'를 활용해 양질의 출처를 먼저 선별한 뒤 선별된 출처를 기반으로 정확도 높은 답변을 생성하는 '문서 기반 리트리버(retriever)'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챗GPT의 맹점을 파고든 라이너는 자체 개발한 '라이너 검색 LLM'이 오픈AI 'GPT-4.1' 모델 대비 우수한 성능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AI 검색 답변 생성에 필수적인 8가지 핵심 컴포넌트 중 4개(카테고리 분류, 과제 분류, 외부 도구 실행, 중간 답변 생성) 분야에서는 성능, 처리 속도, 비용 효율성 등 모든 면에서 GPT-4.1을 능가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라이너 검색 LLM은 토큰당 처리 비용이 GPT-4.1 대비 평균 30~50% 낮아 대규모 트래픽 환경에서도 높은 운영 효율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라이너가 API 활용 서비스를 넘어 자체적인 기술적 해자를 구축했으며 향후 거대 AI 기업의 서비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너의 차별화된 기술력은 특히 전 세계 대학생, 연구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라이너는 논문 검색에 특화된 '딥 리서치'와 '학술 모드'를 제공해 논문 인용 수나 공개 여부, 분야 등을 필터링해 신뢰도 높은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보고서나 논문을 작성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다.
현재 AI 검색 시장은 오픈AI 챗GPT, 구글 제미나이, 라이너와 직접 경쟁하는 퍼플렉시티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 업계 전문가는 “챗GPT가 범용적인 대화와 창작에 특화돼 있다면 라이너는 '신뢰성 있는 정보'와 '학술·전문 리서치'라는 특정 고가치 영역에 집중하는 영리한 전략을 통해 독보적인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는 경쟁이 치열한 범용 시장에서 벗어나 유료 구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핵심 고객군을 공략하는 효과적인 행보”라고 평가했다.
김종효 기자 sound@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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