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의식주컴퍼니, 세탁시장의 ‘제로 투 원’ 이뤄낸 혁신
B2C 넘어 B2B로...‘종합 세탁 테크 기업’
스마트 물류·AI 기술력, 진입장벽 구축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혁신 동력을 책임지는 중견·중소·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내 산업 혁신 지표를 형성하고 경제 역동성 엔진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리스크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단순한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의식주컴퍼니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단순한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의식주컴퍼니

|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 1인 가구 확대와 비대면 서비스 선호 트렌드와 맞물리며 전 세계 세탁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서도 비대면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는 기존 세탁 산업을 기술과 물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의식주컴퍼니는 이런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국내 벤처캐피탈(VC) 시장 혹한기 속에서도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또한 세탁 서비스에 머무르지 않고 기존 오프라인 강자들의 아성을 넘어서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연쇄 창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현대중공업그룹을 나와 2011년 한국 새벽 배송 시초 격인 덤앤더머스를 창업하며 물류와 커머스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경험은 런드리고라는 새로운 혁신 서비스의 밑거름이 됐다.

런드리고 서비스 아이디어는 2017년 조성우 대표가 배민프레시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떠난 미국 여행 중 우연히 탄생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렌터카 뒷유리가 파손되고 소지품을 도난당하는 사건을 겪었는데 도둑들이 다른 물건은 다 가져갔지만 빨래만은 그대로 남겨뒀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 대표는 ‘집 앞에 빨래를 둬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것이 ‘24시간 비대면 세탁 서비스’ 구상으로 이어졌다.

조 대표는 런드리고를 설립하며 피터 틸 페이팔 공동 창업자가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저술한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스타트업 경영철학을 인용했다. 그는 단순한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한다. 기존 세탁 시장은 고객의 물건이 집 밖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왕복 물류’ 특성상 신뢰와 접근성이 중요했고 이 때문에 동네 세탁소 중심 비즈니스 모델이 수십 년간 유지돼 왔다. 조 대표는 덤앤더머스 창업 당시 체득했던 물류와 배송 노하우를 세탁 시장에 접목함으로써 이 고난도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조 대표는 런드리고의 사명을 ‘의식주컴퍼니’로 명명한 이유에 대해 “세탁이 혁신되면 주거 공간이 바뀔 것”이라는 비전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세탁기와 건조기, 빨래 건조대 등으로 인해 주거 공간의 상당 부분을 세탁에 할애해야 하는 비효율을 해결하고 고객에게 시간과 공간을 되돌려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국내 세탁 서비스 시장은 오프라인의 절대 강자 크린토피아와 비대면 혁신의 선두주자 런드리고, 그리고 세탁특공대의 3강 체제다. 크린토피아가 전국 3200여개 가맹점을 기반으로 한 프랜차이즈 모델을 통해 시장의 80%를 장악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반면 런드리고는 자체 스마트 팩토리를 중심으로 한 수직 통합 모델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크린토피아와 런드리고의 비즈니스 모델 차이는 각 기업의 강점과 약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크린토피아가 다수 점포를 통해 고객 접근성을 극대화했다면 런드리고는 거대한 중앙 물류 허브를 통해 비용을 낮추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런드리고의 핵심은 AI 기술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에 있다. 세탁물의 입고와 분류, 출고를 자동화하며 하루 3만벌 이상 의류를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개별 점포 역량에 의존하는 프랜차이즈 모델과 달리 중앙에서 모든 품질과 공정을 통제하고 대량의 세탁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강력한 시장 진입장벽을 구축했다.

런드리고의 자체 기술인 'AI스타일스캐너'는 공정 효율화를 넘어 세탁물의 입고, 분류뿐만 아니라 의류의 브랜드, 디자인, 소재, 세탁 이력 등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다. 데이터는 고객의 세탁 패턴과 선호도를 파악하는 핵심 자산이 되며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 와이셔츠'와 같은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로 연결된다. 이는 런드리고가 세탁업체에서 '세탁 빅데이터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런드리고는 이런 기술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오늘 밤 맡기면 내일 밤 문 앞 배송’이라는 비대면 원스톱 서비스를 구현해냈다. 잦은 야근으로 제때 세탁물을 찾기 어려운 직장인이나 1인 가구, 맞벌이 부부 등에게 압도적인 편리함을 제공하며 소비자들이 런드리고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런드리고의 비즈니스 모델은 막대한 스마트 팩토리 구축 및 운영 비용으로 인해 B2C 고객 주문만으로는 손익 개선에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런드리고가 선택한 전략적 승부수가 바로 B2B 시장 확장이다. 2022년 호텔 세탁 공장인 크린누리를 인수하며 B2B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 ‘호텔앤비즈니스’로 브랜드를 전면 개편하며 B2B 세탁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B2B 사업은 런드리고의 고정비를 상쇄하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핵심적인 성장 동력이다. B2C 고객 주문은 변동성이 크지만 호텔이나 기업체는 대량의 세탁물을 정기적으로 맡기기 때문에 스마트 팩토리의 가동률을 높여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드리고 호텔앤비즈니스는 올해 1월 국내 5성급 호텔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세탁 계약을 체결하며 더플라자, 그랜드 워커힐 서울, 반얀트리 등 1만 객실 이상의 프리미엄 호텔 고객사를 확보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런드리고의 B2B 사업 확장은 기업 고객 확보 외에도 신사업인 ‘세탁 렌탈’ 시장 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런드리고는 최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5성급 호텔 품질의 타월을 제공하고 사용 후 반납하는 ‘호텔 타월 렌탈 서비스’를 출시하며 B2B 사업을 통해 쌓은 모락셀라균 제거 레시피, 초고온 세탁 공정 등 프리미엄 품질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확산시키고 있다. 

또한 런드리고는 피트니스센터, 미용실, 음식점, 중소형 공장 등 B2B 고객을 대상으로 타월이나 유니폼 등을 직접 제조해 공급하고 정기적인 세탁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세탁 렌탈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식주컴퍼니의 사업 다각화는 런드리고를 명실상부한 ‘종합 런드리 테크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핵심 전략으로 평가된다”며 “이는 세탁물을 깨끗하게 하는 서비스를 넘어 현대인의 삶의 양식을 바꾸는 ‘라이프스타일의 혁신’을 지향하는 의식주컴퍼니의 기업 철학을 보여준다. 의식주컴퍼니의 영문 이름이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인 ‘Life goes on’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평가했다.

김종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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