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멤버, 각 분야 ‘어벤저스’급 전문가 구성
NPU 기반 효율성, 소프트웨어 풀스택 역량도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혁신 동력을 책임지는 중견·중소·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내 산업 혁신 지표를 형성하고 경제 역동성 엔진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리스크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리벨리온이 최근 2000억원 규모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투자 유치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시장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 투자에 삼성벤처투자와 삼성증권이 직접 140억원을 투자했다. 리벨리온의 글로벌 대권 도전에 강력한 지원군이 생긴 것이다.
삼성그룹은 리벨리온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과 삼성벤처투자의 직접적인 투자 참여는 재무적 수익 추구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이미 리벨리온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과 손잡고 자사 2세대 AI 반도체인 '리벨'을 생산하는 등 긴밀하게 협업해왔다. 리벨리온의 성장은 삼성 파운드리에도 안정적인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는 전략적 기회라는 분석이다.
이는 삼성이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비(非) 엔비디아' 진영 유력 주자를 육성함으로써 자사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하고 AI 시대 핵심 인프라 공급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리벨리온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생산 기반과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2020년 설립된 리벨리온은 박성현 대표의 독특한 이력과 명확한 비전에서 시작돼 시작부터 주목 받았다. 박 대표는 카이스트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인텔, 삼성전자 모바일 부문, 스페이스X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에서 반도체 설계 역량을 쌓았다. 경력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18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모건스탠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퀀트 트레이딩을 담당했던 경험이다. 금융 경력이 전혀 없는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그는 월스트리트 금융업계 핵심 니즈가 '속도전'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1000분의1초인 밀리세컨드만큼 빨리 예측해야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범용 칩보다 금융업을 위한 주문형 전용 ASIC(주문형 반도체) 칩이 필수적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리벨리온의 첫 번째 AI 칩인 '아이온(ION)'은 박 대표의 모건스탠리 근무 경험을 살려 고빈도거래에 특화된 AI 칩으로 개발됐다. 박 대표의 금융과 반도체라는 이질적인 분야에서의 경험이 리벨리온의 초기 시장 진입 전략과 제품 차별화의 핵심 기반이 됐다.
박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IBM 왓슨연구소에서 7년간 AI 반도체 핵심 설계를 담당했던 오진욱 박사(현 CTO)와 의기투합했다. 오 박사는 IBM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3대 AI 연구소를 모두 거친 인재다. 박 대표는 그를 '한국 AI 칩계의 문익점'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여기에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에서 딥러닝 기술 개발을 담당했던 김효은 박사도 합류하며 '어벤져스급' 인재 구성을 갖췄다. 이들은 한국의 풍부한 반도체 인재 풀과 활발한 벤처 투자를 이유로 실리콘밸리가 아닌 한국에서의 창업을 결정했다.
리벨리온의 창업은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전략적 결합을 통해 초기부터 강력한 기술적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 인재 풀과 벤처 생태계를 적극 활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리벨리온은 이런 인재 구성 덕분에 출발부터 55억원의 벤처투자를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리벨리온은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장악한 AI 반도체 시장에서 NPU(신경망처리장치)를 통한 차별화를 꾀한다. NPU는 인간의 뇌를 모방한 반도체로 딥러닝 연산에 특화돼 GPU 대비 전력 효율이 높고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지닌다. 박성현 대표는 "엔비디아가 분식(GPU) 맛집이라면 리벨리온은 돈가스(NPU) 맛집"이라고 비유하며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엔비디아 GPU는 범용성이 뛰어나지만 NPU는 특정 기능에 특화돼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리벨리온은 AI 추론 연산에 특화된 제품을 제공하며 GPU 대비 월등히 높은 에너지 효율성과 낮은 전력 소모량을 확보하여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사업자 등의 지속가능한 AI 비즈니스를 지원한다. 리벨리온은 엔비디아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NPU의 특화된 강점인 효율성과 속도를 내세워 데이터센터, 소규모 언어모델 등 특정 AI 추론 시장을 공략하는 비대칭 전략을 취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범용성을 앞세운 엔비디아와 달리 특정 니즈를 충족시키는 최적화된 솔루션 제공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현실적인 접근 방식이다.
리벨리온은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3가지 형태의 주요 AI 반도체 제품군을 선보였다.
2021년 출시된 리벨리온의 첫 AI 반도체인 아이온(ION)은 박성현 대표의 모건스탠리 근무 경험을 살려 초단타매매와 같은 고빈도 시스템 트레이딩(HFT) 등 금융 시장에 특화해 개발됐다. 대만 TSMC의 7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됐으며 속도 지연(Latency)을 최소화한 코어 기술이 핵심이다. 월스트리트의 일부 금융기관 및 핀테크 기업에서 실제로 도입하여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023년 출시된 리벨리온의 주력 제품 아톰(ATOM)은 데이터센터 시장을 겨냥한 AI 추론 특화 SoC(시스템온칩)이다. 삼성 파운드리 5나노 공정을 활용하며 삼성 메모리 GDDR6를 탑재했다. 아톰은 2023년 글로벌 벤치마크 테스트인 엠엘퍼프(MLPerf)에서 엔비디아 동급 제품인 엔터프라이즈 서버용 GPU T4 대비 언어 모델(BERT) 대비 1.5~2배 빠른 처리 속도를 기록했으며 비전 모델 테스트에서는 3배 이상 빠른 속도를 보였다. 또한 ISSCC 2024에서 시연된 데모에서는 엔비디아의 A100 대비 5분의1 수준 전력 소모량을 보였고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는 3배에서 4.5배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톰은 KT 클라우드의 데이터센터에 공급돼 상용 서비스에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리벨리온의 차세대 AI 칩 리벨(REBEL)은 초거대 AI 모델(LLM, 멀티모달) 처리를 목표로 한다. 삼성 파운드리 4나노 공정을 활용하고 삼성 메모리의 5세대 HBM인 HBM3e(144GB)를 탑재하며 UCIe 기반 칩렛 기술을 적용해 성능 확장을 꾀한다.
리벨리온은 칩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컴파일러, 라이브러리, 런타임, 드라이버, 펌웨어 등 AI 소프트웨어 풀스택을 자체 개발한다. 첫 제품인 아이온부터 아톰, 리벨에 이르기까지 같은 코어 아키텍처를 활용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또 텐서플로우, 파이토치, 허깅페이스 등 주요 AI 프레임워크를 지원하며 200여개 이상 AI 모델을 포괄적으로 가속한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시장 지배력은 칩 성능뿐 아니라 강력한 AI 개발용 소프트웨어 '쿠다(CUDA)' 생태계에 기인한다. 많은 개발자들이 오랜 기간 쿠다로 프로그래밍을 해왔고 코드가 축적되면서 개발자들이 엔비디아 AI 반도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락인(Lock-in)' 효과가 발생했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이 하드웨어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은 이 벽을 넘지 못해서였다.
리벨리온이 칩 판매와 별개로 소프트웨어 풀스택 개발에 주력하는 것은 엔비디아의 락인 효과를 깨고 개발자들에게 자사 칩 사용 편의성과 효율성을 제공하려는 장기적인 생태계 전략이다. 리벨리온이 하드웨어 우수성만으로는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는 AI 반도체 시장의 본질적 특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사피온과의 합병 또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성현 대표는 AI 반도체 시장이 앞으로 크게 분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엔비디아의 고사양 칩이 부적합한 소규모 언어모델(sLLM) 시장에 집중해 은행 대출 상담 AI 모델이나 항공사 예매 AI 모델과 같은 작은 규모의 AI 모델 구동에 적합한 AI 반도체 '아톰'과 더 큰 모델에 적합한 '리벨', 라마 3.1 모델을 대상으로 하는 '아톰 맥스' 등으로 라인업을 세분화했다.
리벨리온은 또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 해외 파트너십 확대에 적극적이다. 펭귄 솔루션스, SK텔레콤과 AI 데이터센터 분야 경쟁력 강화 및 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적 MOU를 체결했으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마벨(Marvell)과 소버린AI 구축을 위한 맞춤형 AI 인프라 공동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중동 등 해외 공략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각 지역 주요 플레이어들과의 '전략적 연합'을 통해 엔비디아의 독점적 생태계에 대항하고 '대안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장기적 비전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는 “리벨리온은 라인업 다변화와 특정 분야 공략 및 다방면 기업과의 글로벌 협업을 바탕으로 '비 엔비디아' 진영 리더를 목표로 한다”며 “엔비디아와 직접 대결을 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엔비디아가 신경쓰지 못하지만 미래 AI에서 중심이 될 부분을 발빠르게 챙겨 AI 시대 점유율 및 차기 주도권을 향상시키는 영리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김종효 기자 sound@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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