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운영·지속 가능 ‘그린 AI’ 기여
양산 체제 구축·R&D 비용 확보 과제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혁신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혁신 동력을 책임지는 중견·중소·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요소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내 산업 혁신 지표를 형성하고 경제 역동성 엔진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리스크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국가 공동체가 어떻게 인공지능 사회에 대비해 나갈지 그 현장을 같이 살펴봤으면 좋겠다”며 인공지능(AI)·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를 찾았다. 이 대통령의 퓨리오사AI 방문은 한국 소버린 AI(국가주권형 인공지능) 개발과 AI 경제성장의 비전 제시라는 측면에서 큰 상징성을 지닌다. 퓨리오사AI는 한국 AI 기술의 자존심이자 미래 성장 동력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백준호 대표가 AMD와 삼성전자에서 15년간 반도체 설계 경험을 쌓은 뒤 AI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2017년 설립했다. 회사명은 영화 ‘매드맥스’의 여주인공 '퓨리오사'에서 영감을 받아 거대 기업에 맞서 독자적인 혁신을 추구하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2019년 네이버 D2SF 등으로부터 80억원, 2021년 IMM인베스트먼트 등 참여로 누적 9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빠르게 성장 기반을 다졌다. 엑스페릭스와 같은 초기 투자사는 IP 컨설팅 및 업무 협약을 통해 퓨리오사AI 기술 개발을 지원했다. 시드 투자 단계에서 40억원 수준이던 기업가치는 2023년 8월 시리즈C 투자 유치 당시 6800억원으로 급등했다. VC업계에 따르면 시리즈D 투자 유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시 퓨리오사AI는 유니콘에 등극하게 된다.
퓨리오사AI는 올해 초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로부터 약 1조2000억원 규모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독자적인 길을 선택해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독자적인 시장 승부를 선택한 백 대표는 "엔비디아나 퀄컴도 처음엔 스타트업이었고 AI 산업은 스타트업이 주도하고 있다"며 "압도적인 자본이 없어도 인적자원을 결집하면 충분히 파괴적인 혁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퓨리오사AI 기술력이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퓨리오사AI가 단기적 수익보다는 기술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독립적 혁신을 추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AI 산업 변화의 중심에는 고성능 AI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대규모 연산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NPU(신경망처리장치)는 기존 GPU(그래픽처리장치) 중심 시장 판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엔비디아가 글로벌 GPU 시장 90% 이상을 장악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NPU는 AI 추론 분야에서 엔비디아의 독점적 지위를 흔들 잠재력을 지닌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NPU는 컴퓨팅 파워 증강을 넘어 전력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응하며 엔비디아 GPU 아성에 도전하는 핵심 기술이다.
퓨리오사AI는 NPU를 앞세워 AI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2021년 출시된 첫 AI 반도체 ‘워보이’는 이미지 및 영상 분석과 같은 비전 AI 분야에 특화된 NPU로 글로벌 AI 반도체 벤치마크 대회인 'MLPerf' 추론 분야에서 엔비디아 T4를 넘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엔비디아 T4 대비 가격 대비 성능이 4배 이상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GPU 대비 저전력 고효율 연산이 가능해 국내 클라우드 서비스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 AI 클라우드에 적용되며 효율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출시된 두 번째 AI 추론 가속기인 ‘레니게이드’는 데이터센터에서 대형 언어 모델(LLM) 및 멀티모달 모델의 효율적인 추론 수행을 위해 특별히 설계됐다. 대만 TSMC의 5나노미터(nm) 공정 및 첨단 2.5D 패키징 기술인 CoWoS(Chip-on-Wafer-on-Substrate)를 기반으로 생산된 레니게이드는 AI 반도체 최초로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 HBM3를 탑재해 하드웨어 경쟁력을 극대화했다.
레니게이드는 경쟁 제품인 엔비디아 H100, L40S과 비교해 압도적 전력 효율성을 자랑한다. 절대 성능 면에서 엔비디아 H100의 절반 수준이지만 전력 사용량은 4분의1 수준으로 전력 사용 효율이 2배에 달한다. 전력 효율성은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 절감 및 친환경 솔루션 제공에 크게 기여하며 AI 시대 핵심 요구사항인 '그린 AI'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CUDA(쿠다)의 존재다. 퓨리오사AI도 하드웨어 성능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컴파일러, 런타임, 드라이버, 모델 배포 및 관리를 위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구성 요소를 제공하고 있다. 개방형 생태계를 위해 개발자 문서를 공개하는 등 개발자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대규모 언어 모델(LLM) 추론 성능을 높이기 위한 고성능 추론 엔진인 '퓨리오사 LLM'은 다양한 고급 기능을 포함해 LLM 추론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 퓨리오사AI의 소프트웨어 스택 구축 노력은 엔비디아 락인 효과를 극복하고 NPU 상용화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를 해결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퓨리오사AI는 LG AI연구원, 사우디 아람코, 삼성전자 등과 활발히 협업 중이며 IT 솔루션 전문 기업 에티버스와 총판 계약을 맺어 판로도 확보했다. 국내 AI 대표 기업 업스테이지와도 AI 생태계 확장을 위한 공동 개발 및 영업 협약을 체결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위한 준비도 진행해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다. 다만 IPO 이후 불거질 수 있는 유동성 문제를 최소화하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당분간 IPO를 연기하고 투자 유치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퓨리오사AI는 2023년 매출액 36억2235만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손실은 637억3000만원에 달했다. 2022년 매출 3억원, 영업손실 501억원과 비교하면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영업손실 규모도 함께 증가한 양상이다.
대규모 영업손실은 딥테크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 R&D 투자와 인력 확충의 결과로 해석된다. 첨단 AI 반도체 칩 하나를 설계하는 데 수백억원 규모의 R&D 비용이 소요되며 퓨리오사AI의 R&D 비용은 국내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재무 지표는 퓨리오사AI가 본격적인 양산 및 수익 창출 단계보다는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성장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퓨리오사AI는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를 목표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마켓플레이스에 2세대 칩 레니게이드를 출시한 것은 글로벌 클라우드 사용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전략적 움직임이다. 또한 퓨리오사AI는 '반(反) 엔비디아' 연합에 참여하는 등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독점적 지위에 대항해 다양한 기업들이 AI 칩의 상호 연결 기술 확보를 목표로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 퓨리오사AI의 참여는 한국 AI 반도체 기술이 국제 시장에서 직면하고 있는 도전 과제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퓨리오사AI의 경쟁력은 비용 절감과 친환경이다. AI 기술 발전은 막대한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이라는 환경적 과제를 동반한다. 챗GPT와 같은 고성능 AI 모델의 운영에는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비용과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며 AI에 사용되는 자원은 매년 3~4배씩 증가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 AI'는 혁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필수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퓨리오사AI의 NPU는 엔비디아 GPU 대비 압도적인 전력 효율성을 자랑한다. 이는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을 절감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기여한다. 퓨리오사AI의 반도체는 AI 생태계에서 지속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AI를 구동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평가된다. 퓨리오사AI 핵심 기술 자체가 '그린 AI'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ESG 기여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퓨리오사AI가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고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한 R&D 비용의 지속적인 확보가 필요하다. R&D에 집중하는 단계인 퓨리오사AI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개발자 친화적인 환경을 더욱 공고히 해 엔비디아가 구축한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CUDA)를 넘어서야 한다. 퓨리오사AI가 PyTorch 호환성 및 Furiosa LLM 등을 통해 노력하고 있지만 광범위한 개발자 커뮤니티의 지지와 활용을 이끌어내는 것은 여전히 큰 과제다.
본격적인 양산 체제 구축과 글로벌 고객사 확보도 중요하다. 레니게이드의 샘플 제공 및 MS 애저 마켓플레이스 진출은 긍정적이지만 대규모 양산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실제 적용 사례를 늘려가는 것이 향후 매출 성장의 핵심이 될 것이다.
국내외 경쟁 심화에 대한 대응도 과제다. 리벨리온-사피온 합병과 같은 국내 경쟁사 움직임은 물론 글로벌 빅테크들의 자체 AI 칩 개발 경쟁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기술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와 맞물려 IPO 연기 결정은 장기적 기업 가치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지만 시장의 불확실성과 투자 심리 변화에 따라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정적인 재무 기반을 유지하며 유니콘 등극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AI업계 관계자는 “퓨리오사AI는 리벨리온과 함께 구축한 국내 AI 반도체 시장 양강 구도 속에서 워보이와 레니게이드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으며 전력 효율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그린 AI 시대 요구에도 부응하고 있다“며 “다양한 문제점을 극복하며 유니콘 기업으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는 퓨리오사AI가 한국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김종효 기자 sound@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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