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자본 공시 요구 움직임 꿈틀...“탄소배출처럼 자연자본도 관리해야”
도요타 등 전세계 416개 기업 자연자본 공시 참여 선언…한국은 5곳 뿐
지구의 마지막 경고선인 1.5℃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 높아졌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기온보다 1.5℃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자'는 뜻을 모은지 8년 만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한 것이 무색할 만큼 온도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이에 창간 9주년을 맞는 한스경제는 그간 천착해온 '1.5°C HOW' 캠페인에 맞춰 인류 생존 최후의 방어선인 1.5°C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부문별로 국내외 동향과 쟁점,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엮어 연중기획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기후위기 못지 않게 자연파괴와 생물다양성의 훼손도 지구와 인류의 존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기, 토양, 물, 숲 등의 자연자원과 물 정화, 탄소 흡수, 생물 보존 등 생태계 서비스가 인간의 경제활동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이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를 재무적으로 평가하고, 그 관리방안을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자연자본 공시' 도입 움직임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기업의 경영활동에 쓰이는 자원 중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의 총칭인 '자연자본' 논의의 시작은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자연자원과 생태계는 무한하게 주어지는 공짜 서비스가 아니라 기후변화에서 나타나듯 끝이 정해진 유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 사용을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연자본 공시 확대에 따른 기업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자연자본 공시 국제표준과 법제화 등을 통해 점차 의무화될 가능성이 높아 기업의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 해외에선 이미 자연자본 관리가 미흡해 경제적 손실을 겪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생물다양성의 손실을 글로벌 10대 위험 요소 중 3위로 선정하고 이러한 손실이 경제적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전세계 GDP의 50% 이상이 자연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40년간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해 생물다양성의 69%가 감소했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 약 100만 종의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육상 환경의 4분의3, 해양 환경의 66%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크게 변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2022년 12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자연자본 공시를 제도화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졌다. 이를 통해 당사국의 자율적 이행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을 넘어 자연자본 공시 이행 과정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평가하는 절차가 마련됐다.
2023년에는 유엔 산하 자연자본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가 최종 권고안을 발표해 기업들이 자연 관련 리스크와 이슈를 공시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론을 제시했다. TNFD의 접근법은 기업의 자연의 의존도, 영향, 리스크와 기회를 식별하고 이에 대한 점검과 평가를 통해 기업의 경영 전략에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세계경제포럼 연구결과, 긍정적 자연으로의 전환이 이뤄질 경우 2030년까지 10조1000억달러 규모의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자연자본 공시에 참여하고 있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세계 416개 기업과 기관이 TNFD에 참여해 자연자본 공시를 선언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117개 기업이 참여해 눈에 띈다. 반면 한국은 5개 기업만이 참여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황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글로벌 기업은 도요타, 이케아, BAT, 후지필름, LVMH, 볼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다.
스페인의 이베르드롤라는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모델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호주의 포리코는 자연자본 보고서에 탄소감축과 물 여과, 생물다양성 서식지 제공 등의 요소를 포함시켰다. 일본의 NEC는 2023년 IT 업계 최초로 TNFD 보고서를 발행하고, 자연 의존도와 가치 사슬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자연자본 관리 대처가 미흡해 경제적 피해를 겪는 기업들도 생기고 있다. 자연자본 관리 소홀로 주가 하락, 소송, 벌금 등의 피해다. 스웨덴의 식물성 기름 제조업체 AAK는 불법적인 산림벌채 지역 농장에서 공급받는 농장과의 거래를 한 것이 논란이 돼 주가 5% 하락하고 회복하는데 4개월 이상 소요됐다. 프랑스 소재 국제은행인 바앤피 파리바는 불법 삼림벌채와 연루된 회사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소송에 휘말렸다. 브라질 기업 JBS는 불법 삼림벌채 농장과의 거래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미국 주식 상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향후 자연자본 공시는 기후공시처럼 국제 표준이나 법제화를 통해 점차 의무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는 수산업, 임업, 식품업 뿐만 아니라 금융, 운송 등 서비스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작년 1월 자연자본 공시를 포함한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CSRD)을 발효하고, 올해부터 일부 기업에 공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도 글로벌 ESG 공시 기준에 생물다양성 관련 공시를 포함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2023년 12월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수립하고, 기업의 생물다양성 정보 공시를 장려하고 있다. 2025년까지 TNFD 권고안을 바탕으로 한 국내 자연자본 공시 표준 체계가 마련될 예정이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그린전환팀장은 "자연자본을 공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은 국제 기준 수립 과정을 주도하며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며, "재무공시, ESG 공시에 더해 자연자본 공시가 기업 보고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는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연자본을 정의하고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자연자본 목표 운용 모델을 구축하고 기존 재무보고 체계와 유사한 수준에서 자연자본 공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선형 기자 peter@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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