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마지막 경고선인 1.5℃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 높아졌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기온보다 1.5℃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자'는 뜻을 모은지 8년 만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한 것이 무색할 만큼 온도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이에 창간 9주년을 맞는 한스경제는 그간 천착해온 '1.5°C HOW' 캠페인에 맞춰 인류 생존 최후의 방어선인 1.5°C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부문별로 국내외 동향과 쟁점,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엮어 연중기획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스경제=김정연 기자] 기후위기로 대부분의 생명체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를 비켜 나가는 생명체가 있다. 바로 ‘모기’다
일반적으로 기온 상승은 모기의 생존 확률을 높인다. 기후변화에 따라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모기가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 동시에 기생충이나 바이러스가 모기 체내에서 증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단축한다. 영국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의 올리버 브래디 교수는 “기온이 오를수록 모기들은 더 빨리 성장하고, 더 오래 살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전염병 전파 위험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기온 상승은 모기 생존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모기의 서식지도 넓힌다. 온열대 지역에 국한됐던 모기들이 북부 한랭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고온과 폭염은 물론이고 잦은 비로 모기가 좋아하는 고온 다습한 서식 환경이 이전보다 더 잘 조성되고 있다. 비영리 기후연구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250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70% 이상의 지역이 모기가 살기 좋은 덥고 습한 환경으로 변했다.
올해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 ‘숲모기’가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6월 서울대 생명과학부 진화·계통유전체학연구실은 숲모기를 지난해 8월 제주 동백동 습지에서 처음 발견했다는 논문을 공개했다. 숲모기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덥고 습한 열대성 지방에서 주로 발견되는 모기 종이다. 한반도가 덥고 습한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
논문을 작성한 방우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이번에 발견된 숲모기뿐 아니라 더 많은 동남아시아 산지의 곤충들이 한반도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기후변화로 인해 모기의 서식지가 넓어지면서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등 모기 매개 질병의 발생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서식하며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던 ‘흰줄숲모기’가 유럽 여러 국가로 퍼져 뎅기열 발병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유럽도 흰줄숲모기 등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열대 지방에 국한돼 있던 뎅기열 발병 사례가 작년에 유럽연합(EU)과 유럽경제지역(EEA)에서 총 130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감염 증가 추세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뎅기열이 460만건의 감염 사례가 발생한 미주 지역은 2024년에는 1200만건으로 2.5배 가까이 늘었다. 아울러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지난해와 비교해 뎅기열 감염자가 2배 이상 늘었다.
남미에서는 주로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 국한해 발병했던 모기 매개 질병인 오로푸치열이 발병 사례가 없던 나라에서 올해 들어 100건이 넘는 확진 사례가 나오는 등 대륙 전체로 확산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에 대해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 주로 국한됐던 발병 현상이 다른 국가로 확산한 것은 기후변화와 삼림 벌채, 도시화 등으로 질병이 번지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말라리아 모기가 출현하는 시기가 해마다 점점 빨라지는데다 지역 범위도 넓어졌다. 올해 말라리아 주의보가 처음 발령된 6월18일은 작년보다 일주일 이른 시점이다. 여기에 서울에서도 처음으로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질병관리청은 전국에 말라리아 주의보를 발령하면서 서울 내 13개 구를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선정했다. 국내에서 말라리아는 경기 북부나, 인천, 강원 지역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주로 발생했지만, 올해부터는 서울도 처음으로 ‘위험지역’에 포함됐다.
질병관리청은 기후변화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옮기는 곤충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감염병 발생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불어 지난 2021년 294명이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 역시 2023년 747명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7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1월 14일 기준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690명이다.
치료제가 있는 말라리아와 달리 뎅기열은 지금까지 국내에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없어 위험성이 더 크다. 그간 국내 뎅기열 환자는 해외에서 감염돼온 경우만 보고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토착화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모기 번식과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역·보건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고인 물 제거, 하수 처리 개선, 배수 시설 관리 등을 통해 모기의 번식지를 최소화하는 한편 도시의 열섬 효과를 줄이기 위한 녹지 조성과 온도 관리도 병행되고 있다. 여기에 모기 매개 질병에 대한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기후변화 예측 데이터로 질병 확산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후적응 정책도 필요하다.
이런 모기 매개 질병의 확산은 단순한 보건 문제를 넘어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모기와의 전쟁'을 단순히 보건·방역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김정연 기자 straight30@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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