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고진영과 박성현, 전인지. /LPGA, KLPGA 제공
왼쪽부터 고진영과 박성현, 전인지. /LPGA, KLPGA 제공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한국여자골프가 깊은 침체기에 빠졌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5개 대회 째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고 있다. 태극낭자들이 시즌 개막 후 15개 대회에서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한 건 2000년 이후 24년 만이다.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등 LPGA 투어 1세대들이 개척하던 초창기 상황으로 뒷걸음질 친 셈이다.

부진의 원인은 우선 내부에 있다. 세계적인 교습가이자 과거 고진영에게 스윙을 가르쳤던 고덕호 SBS 골프 해설위원은 18일 본지와 통화에서 “최근 미국에 진출했던 임진희, 성유진, 유해란, 안나린 등은 KLPGA에서 잘하는 선수들이긴 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톱 플레이어는 아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박민지같이 국내 무대를 평정한 선수가 미국 가서 우승하면 고진영, 전인지 등 기존 선수들도 동기부여가 돼 성적을 내는 시너지가 생길 텐데 국내 톱 플레이어가 미국으로 가지 않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원인이다”라고 진단했다.

고덕호 위원은 “KLPGA 성적으로 세계랭킹 포인트가 인정되기도 하니 국내 톱 플레이어들이 미국에 잘 나가지 않고 있다. LPGA 메이저대회 때나 한 번씩 나가는 추세다”라고 짚었다.

고진영, 박성현, 전인지 등 LPGA에서 오래 생활했던 선수들이 지친 것도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고덕호 위원은 “측근을 통하거나 직접 들어보면 선수들이 권태기에 빠져 있다”며 “(제대로 된) 안식처 없이 호텔에서 호텔로 전전하는 객지 생활을 오래 하니 지치고 외로움도 쌓인 상태다. 선수들 표현으론 이런 상태가 3~5년 간다고 하더라. 한국 선수들의 강점이 집념과 끈기인데 지금은 권태기에 빠져들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힘든 상태다”라고 털어놨다. 최근 LPGA 대회들에서 비교적 투어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나린, 임진희, 유해란 등이 상위권에 오르내리고, 기존 선수들은 대체로 부진한 현상은 고덕호 위원의 말을 방증한다.

왼쪽부터 임진희, 안나린, 유해란. /LPGA, 연합뉴스
왼쪽부터 임진희, 안나린, 유해란. /LPGA, 연합뉴스

한국여자골프는 과거 LPGA에서 박인비, 유소연, 박성현, 고진영, 김세영 등 세계랭킹 1위,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거나 주요 부문 톱 랭커들이었던 선수들을 주축으로 2015년과 2017년, 2019년에 각각 15승씩 합작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기점으로 2020년과 2021년 7승씩 합작하는 데 그치더니 2022년(4승)과 지난해(5승)에도 크게 부진했다.

고덕호 위원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국내로 들어오고 싶다는 선수들도 꽤 있다. 하지만 들어오면 시드전을 다시 치러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일부 선수들의 속사정을 얘기했다.

2000년에는 시즌 개막 후 16번째 대회에서 한국 선수의 첫 승이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 16번째 대회인 메이저 KMPG 위민스 PGA 챔피언십(21~24일)에서 한국 선수의 첫 승이 나올 진 불투명하다. 고덕호 위원은 “한국여자골프는 당분간 답보 상태가 이어질 것 같다. 한동안 이 분위기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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