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기자회견장
골프 대디들에게 시사점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어림잡아 100여 명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취재진은 ‘골프 전설’이 등장하자 앞다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플래시 세례로 끊임없이 번쩍이던 박세리(47)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해 보였다.
1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에서 박세리희망재단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고소 관련해 이사장 자격으로 기자회견을 연 박세리는 “기쁘지 않은 소식을 갖고 와 죄송하다”고 입을 열었다. “항상 좋은 일로만 많은 기자회견을 했다”던 박세리는 “이런 상황이 난감하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박준철 씨의 치부 등 보이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밝히는 자리였던 터여서 박세리의 표정도 내내 굳어 있었다.
◆눈물의 기자회견장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해 9월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 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 고소했고, 경찰은 최근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박준철 씨는 새만금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 사업에 참여하려는 과정에서 박세리희망재단 도장을 위조했으며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박세리희망재단 측은 결국 박준철 씨를 고소한 상황이다.
박세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최선을 다해왔지만, 아버지의 채무 문제는 하나를 해결하면 마치 줄이라도 서 있었던 것처럼 다음 채무 문제가 생기길 반복했다"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그러면서 문제가 더 커졌고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됐다. 사건 이후론 아버지와 연락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세리는 "재단 차원에서 고소장을 냈지만 제가 이사장이고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소를 결정하게 된 이사회 분위기에 대한 질문엔 "제가 먼저 사건의 심각성을 말씀드렸고 제가 먼저 (고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냈다"고 답했다.
부친 사건에 대해 덤덤하게 설명해 나가던 박세리는 필드 현장을 오랫동안 함께 했던 베테랑 골프 담당 기자의 애정이 담긴 질문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 기자는 “박준철 씨와 함께했던 시간이 보기 좋았다. 박세리 프로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데 일이 생기기 전 막을 순 없었나”라고 애정 섞인 질문을 했고 이에 박세리는 북받치는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듯 불안한 시선 처리를 하더니 결국 눈물을 흘렸다.
1분여간 말을 잇지 못하다 감정을 추스른 박세리는 “저는 눈물이 안 날 줄 알았다. 정말 가족이 저한텐 가장 컸으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막을 수 없었느냐’고 물어보셨다. 막았다. 계속 막았고 또 반대했다. 한 번도 아버지 의견에 동의한 적이 없다”며 “전 제 갈 길을 갔고 아버지도 자신의 길을 가셨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더 이상 (아버지 채무와 관련해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건 확실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골프 대디들에게 시사점
이번 사건은 단순히 박세리 가정사의 일로만 치부할 순 없다. 그동안 국내외 투어에서 뛰던 일부 정상급 선수들의 ‘골프 대디(Golf daddy)’들은 좋지 않은 일로 보도에 오르내린 바 있다. 어찌 보면 한국 골프에 깊숙이 뿌리 내린 골프 대디의 그늘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투어 선수들에게 흔히 ‘골프를 시작한 계기’에 관해 물으면 십중팔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에 갔다가 시작하게 됐다”는 답변을 한다. 자녀 선수의 출발점이 되면서 선수가 됐을 때 코치, 운전사, 매니저, 캐디, 멘탈 트레이너 등이 되어주는 건 분명 골프 대디란 존재의 순기능이다. 요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정상급 선수인 박현경의 아버지 박세수 씨가 대표적인 골프 대디로 꼽힌다. 한국프로골프(KPGA) 프로 출신인 박세수 씨는 캐디를 자처하며 딸의 우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왔다.
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다 보면 자칫 부모-자녀 간의 거리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 한국 골프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게 골프 대디들이지만, 좋지 못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미국의 ‘헬리콥터 맘’이나 ‘사커 맘’처럼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들이 있다. 자녀에게 부모인 자신의 정체성을 과잉 투영하다 보면 자녀에 대한 그릇된 욕심이 생길 수 있어 문제다. 박세리 부녀간의 문제도 원조 골프 대디였던 아버지가 성공한 자녀의 높은 인지도를 이용하려 한 사례다.
선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한 골프 관계자는 19일 본지에 “여자 선수의 경우 아버지, 남자 선수의 경우 어머니의 언행을 보면 그 자녀 선수의 미래도 대략 짐작이 간다. 자녀 선수에게 자율성을 주지 않고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매니지먼트사 직원들을 하대하는 듯한 언행을 하는 부모들의 자녀 선수들은 대개 뛰어난 선수가 되지 못하더라”고 경험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일부 골프 대디, 골프 맘들의 극성은 마치 사교육 시장 부모들의 극성을 보는 듯해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덧붙였다.
박세리 부녀 사태는 골프 대디들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졌다. 급박했던 기자회견장에서 골프 유망주에 대한 지원과 육성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던 박세리. 그는 역설적으로 골프 유망주였던 자신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길러낸 ‘골프 대디’ 아버지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설이자 여장부로 통하던 박세리의 뜨거운 눈물은 골프 대디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 골프계에도 진한 여운을 남겼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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