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미국발 관세 50% 부과·EU 탄소국경조정제도 예고
하청 노동자 단체교섭권 보장·노조 손배 청구 금지
철강업계 “경영 리스크 증가” VS 노동계 “미봉책”
27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불법파견·교섭거부’ 현대제철 비정규직 집단 고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27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불법파견·교섭거부’ 현대제철 비정규직 집단 고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발 50% 관세 부과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예고,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까지 삼중고(三重苦)에 앞이 보이지 않는 난관에 부딪혔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여당 주도로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표결을 통해 재석의원 186명 중 183명이 찬성, 3명이 반대하며 노란봉투법을 의결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 사용자에 대한 간접고용(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 △특수형태 근로종사자·플랫폼 종사자의 단결권 보장 △쟁의 범위를 경영상 결정까지 확대 △노조 쟁의에 따른 사용자(원청)의 손해배상 청구 금지 등을 골자로 한다. 원청도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로 보고 그 책임이 강화된다.

기존에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만 면제됐지만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넘으면서 앞으로 사용자가 노조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에 철강업계는 가뜩이나 어려웠던 경영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3월 미국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에는 이를 50%로 높였다. 최근에는 파생상품 407종까지 관세 부과를 확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철강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9% 감소한 2억8341만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3월 이후 4년 4개월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EU 역시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어서 철강업계의 큰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철강을 포함한 탄소 집약적 6개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 시 배출되는 탄소량을 측정하고 EU 측 수입업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배출량 측정값에 대한 3자 검증과 배출량에 상응하는 인증서 구매·제출 의무가 추가돼 추가된다. 철강업계에서는 CBAM을 사실상 관세로 인식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CBAM 도입 후 국내 철강업계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2026년 851억원에서 2034년 55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서 업계에서는 하청 교섭 확대와 이로 인한 생산 중단이라는 경영상의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상적으로 철강사업은 수백개의 협력업체가 얽혀 있는 구조다. 법이 시행되면 원청 기업은 제조 과정 전반에서 발생하는 모든 법적 분쟁에 대응해야 한다. 파업 발생 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돼 손실 규모도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원청의 책임 확대는 기업의 고용 및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이 (하청) 근로자의 권리가 보장됐다며 정치권의 통과에 전반적으로 환영의 입장을 내놓았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대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이 시행을 앞둔 만큼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번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가 미봉책에 그쳤다고 반발하며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성명문을 통해 "개정법은 여전히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국가와 자본은 법 개정이 사회적 요구로 이뤄진 만큼 현존하는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도 철회하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27일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원청인 현대제철이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 파견법을 위반했다며 집단 고소했다. 집단 고소에는 노조원 1892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또 원청이 동일노동·동일임금 등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회는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다음 날인 2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제철이 자회사를 내세워 불법 파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정규직과 동일한 근로조건 보장 및 직접고용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제조업 현장은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혼재돼 작업을 한다. 지시, 관리 감독도 원청이 한다”면서 “2021년 고용노동부가 현대제철에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원청은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고 하청업체 대표를 자회사 관리자로 이동시킨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하청업체와 교섭할 때 교섭장 옆 회의실에서 원청 직원이 대기하고 있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며 “교섭 중 수정사항이 생기면 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직원한테 확인받으러 가는 등 소소한 것 하나까지도 원청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해 원청의 지배력이 아직도 막강함을 방증했다.

이어 “우리의 투쟁은 노란봉투법 입법과 맞닿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사용자가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데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 한들 큰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에 고소와 국정감사로 책임을 묻기 위한 투쟁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며 “원청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노동계가 투쟁을 빈번히 할 것처럼 언론에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해 사용자(기업)와 법의 수용에 있어 간극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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