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트럼프, 바이든 ‘불허’ 명령 재검토→승인
일본제철 美 현지 생산 체제 구축 통해 우위
국내업계 ‘美 관세 인상·경쟁 심화’ 이중고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 연합뉴스 제공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 연합뉴스 제공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함에 따라 미국 내 철강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철강업계에 트럼프 관세에 이은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철강업계 및 CNBC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사실상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는 국가안보협정(NSA) 체결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둘러싼 안보 우려를 충분히 경감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당시 내려진 불허 명령을 수정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와 관련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내용으로 NSA를 체결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4일 전했다.

일본제철과 미국 정부 간 체결된 NSA의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까지 베일이 가려져 있다.

일본제철이 2028년까지 110억달러(약 15조원)를 미국 현지 철강 시설 등에 투자할 계획이고 미국 정부가 소수 지분으로도 핵심 경영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 주식인 '황금주'를 부여받았다는 정도가 공개됐을 뿐이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NSA에는 일정 기간 US스틸 공장을 폐쇄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한다는 조건과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 내용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수를 통해 일본제철은 향후 US스틸 지분 100%를 인수해 자회사화할 계획이다.

일본제철은 2023년 12월에도 US스틸 인수를 추진했지만 미국 철강 노조 등이 반발하면서 바이든 전 대통령이 불허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가안보 우려와 미국 핵심 산업을 미국 소유로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에게 US스틸이 과거 자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기업이라는 인식도 불허 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황금주 등을 통해 의사결정권의 헤게모니를 미국이 쥐려는 것 같다”며 “US스틸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돼 있기 때문에 외부 수혈을 통해서라도 이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일본제철의 미국 시장 경쟁력 강화로 인해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일본제철은 세계 조강 생산량 4위 기업으로 이번 인수를 통해 3위권 진입이 유력시된다. 특히 US스틸의 인프라를 활용해 전기차용 고부가가치 강판 등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 한국 철강사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대표 철강사가 향후 미국 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인 자동차용 강판과 전기차 모터에 쓰이는 전기강판 등을 중심으로 일본제철과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철강 관세가 현실화하자 현대제철은 지난 3월 미국 루이지애나에 58억달러(8조5000억원)를 투자해 자동차 강판에 특화된 전기로 일관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포스코 역시 이 제철소에 지분 투자 등의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손영욱 철강산업연구원장은 “현대제철은 일단 미국 현대자동차 공장에 공급할 자동차용 강판에 집중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당장은 (일본제철·US스틸과) 미국 시장에서 부딪힐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일본제철이 인수에 성공했더라도 US스틸이 당장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일본제철이 US스틸의 내수 기반을 활용할 수 있어 국내 철강업계보다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미국발 관세 전쟁에서 경쟁자인 일본제철이 결과적으로 한발 앞서 나간 부분이 국내 철강업계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인상하면서 국내 철강사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제철은 미국 현지 생산 시설을 확보하며 관세 최소화 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국내 철강사에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관세 인상과 경쟁 심화라는 이중고로 받아들여지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연간 수입량(2622만톤)이 수출(802만톤)의 3배가 넘는 세계 최대 철강 순수입 국가”라며 “한국 철강업계에 미국은 생산량의 13%를 수출하는 제1의 시장인 만큼 이번 결정의 파급력은 크다”고 말했다.

건설·인프라·조선산업에 공급되는 고부가 강판 분야에서 국내 철강사들은 US스틸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특단의 대책 마련에 있어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일본제철은 전기로 기반의 친환경 공정 도입도 병행하고 있어 향후 미국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환경 규제에 대한 대비 측면에서도 한국보다 앞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인수로 철강업계가 단순 가격 경쟁이 아닌 기술·친환경·프리미엄 중심의 체질 개선, 북미 등 전략시장 내 현지 생산기반 확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며 “정부 당국 역시 통상 압박 대응과 함께 한국 철강의 수출 다변화 및 고부가가치화 지원책 마련을 서둘려야 한다는 원론적인 방안이 가장 적절한 대응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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