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무뇨스·성 김 등 현지 고려한 인사까지
"필요하다면 내연기관도"…최대 매출처 미국에 집중
트럼프 1기 당시 답습 우려도
[한스경제=최창민 기자]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장악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호세 무뇨스 사장을 첫 외국인 CEO에 임명하고 주한 미국대사 출신 '미국통'으로 꼽히는 성 김 고문을 사장단에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EV9 GT', '아이오닉9', '이니시움(콘셉트)' 등 플래그십 차종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체제의 불확실성을 종식하는 한편 현지 자동차 산업에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다.
26일 현대자동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오는 2025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걸쳐 3개 차종을 출시한다. 현대차에서는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9'과 수소전기 콘셉트카 '이니시움'의 실차를, 기아에서는 'EV9'의 고성능 버전 '더 기아 EV9 GT' 등이 대표 선수다. 앞서 양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 중인 LA 오토쇼에서 이들 차량을 글로벌 시장에 공개했다.
아이오닉9과 EV9 GT는 글로벌 시장의 전기 SUV 인기 추세에 따라 대형 차종을 선호하는 현지 시장을 노린다. 미국 출시 1주년을 앞둔 EV9이 올해 9월까지 1만5969대가 팔린 만큼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이니시움을 미국 시장에 출시하겠다는 점은 주목받았다. 미국의 수소차 역성장 규모가 올해 들어 글로벌 시장 가운데 가장 컸기 때문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주요국들 가운데 수소차 판매량 감소율은 미국(-82.4%)이 가장 두드러졌다. 판매 대수는 322대로 가장 적었다. 2분기에는 99대의 수소차가 팔렸는데 현대차 '넥쏘' 판매량은 26대에 그쳤다.
이 같은 행보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인사다. 현대차는 이달 중순 깜짝 임원 인사를 발표하고 호세 무뇨스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GCOO) 및 미주권역담당으로 합류한 무뇨스 사장은 북미 지역 세일즈 전문가로 꼽힌다. 딜러 경쟁력 강화, 수익 중심 경영 등을 인정받은 그는 2022년 미주 권역을 비롯한 유럽, 인도, 아중동 등 해외 권역 글로벌 사업을 총괄해왔다. 현대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무뇨스 사장이 합류한 이후 현대차는 승용과 RV 제품의 미국을 포함한 해외 매출이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에는 RV 해외 매출이 22조3005억원을 기록해 20조원을 넘기는 성과를 냈다.
성 김 고문을 사장단에 앉힌 점도 두드러진다.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미 국무부 한국과장,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주필리핀 미국대사,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 등을 거친 그는 미국과 한반도·동아시아의 외교 최전선에서 활동한 '미국통'이다.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까지 두루 겪은 점도 급변하는 미국 시장에서 패권을 쥐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의지라는 관측이다.
현대차그룹이 이토록 미국을 강조하는 데는 트럼프 2기 체제를 앞둔 시장 불확실성이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미국 대선 이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설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를 중심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자산으로 꼽히는 IRA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겠다는 발언이 지속해서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시장이 최대 매출처이자 전동화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게 걸림돌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역대 최대 물량을 팔아치웠다. 지난 2021년 기록한 148만9천118대를 경신해 165만2천821대까지 증가했다. 현대차와 기아 양사 모두 10%대의 판매량 증가율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는 전동화도 선주 그룹에 들어섰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등 현대차그룹의 현지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0%까지 확대됐다. 포드(7.4%)와 제너럴모터스(6.3%)를 앞지르고 테슬라를 이어 2위까지 올랐다. 이 같은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지속적인 시그널을 보내면서 존재감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내연기관 확대까지 언급했다. 유연한 대응을 강조한 무뇨스 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규제가 바뀌면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면서 "고객이 원하는 바에 따라 하이브리드차(HEV) 투자와 내연기관차 생산을 늘리려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행보에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가 향후 미국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의 압박이라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이 지난 트럼프 1기 체제 당시 31억달러, 당시 환율로 3조6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에만 10조원을 상회하는 투자를 한 만큼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투자로 공장을 증설해 국내 출하 물량이 줄면 노사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는 북미 시장에서 발생하는 매출 규모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만큼 대미 전략을 다각도로 전개하는 모습”이라며 “다가올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창민 기자 ichmin6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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