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상하이)=강은수 특파원 |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Takaichi Sanae)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을 계기로 중·일 관계가 급격한 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해당 발언을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며 외교·경제·문화·군사 전 영역에 걸쳐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중의원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상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발언하며 대만해협 비상사태 발생 시 일본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만 유사(有事)시’는 중국의 대만 침공 등 대만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를 가리키는 일본식 표현이다.
이에 중국은 즉각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했으나 다카이치는 이를 거부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중국은 일본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중국의 강경 대응은 외교 분야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중국은 오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일본 총리와의 접촉을 거부했으며, 마카오에서 예정됐던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도 전격 연기됐다.
또한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중일 관계 긴장 영향으로 중국 지방정부와 협력해 개최할 예정인 세미나, 비즈니스 상담회 등을 포함한 24개의 중국 내 행사가 취소되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리창 총리는 일본 지도자를 만날 계획이 없다”며 “일본은 자제심을 갖고 행동하기를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은 극도로 잘못된 인식”이라며 “중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전후 국제 질서에 도전하며 3국 협력의 기반과 분위기를 훼손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한 “올해는 대만 반환 80주년”이라며 “대만이 위기에 처해 있든 아니든 일본이 관여할 바 아니다. 대만을 빌미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일본에 더 큰 문제만 초래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푸충 유엔 주재 중국 대사 역시 일본이 ‘평화의 길을 걷겠다’는 약속을 공공연하게 저버렸다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전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일본 고위 외교인사의 베이징 방문 역시 별다른 진전 없이 종료되며 외교적 출구는 사실상 막힌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간 갈등은 문화와 여론 영역으로도 확산됐다. 중국 내 일본 문화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며 사실상 ’한일령‘ 국면에 들어섰다. 일본 가수 콘서트와 배우 팬미팅, 보이그룹 행사, 영화 개봉 일정까지 영향을 받으며 민간 교류도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중국 내 여론 역시 강경한 분위기다. 중국 언론은 일본 시민들이 다카이치 총리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며 그의 발언을 일본 내 우익 역사관의 연장선으로서 비판했다.
현지 언론은 지난 15일 수백명의 일본 시민들이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다카이치 퇴진’ ‘외교를 모르는 사람은 총리가 될 자격이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사임을 요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을 보도하며 중국 내 방일 정서를 부각시키고 있다.
경제적 파장도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하자 10여개의 중국 항공사가 일본 노선 탑승권에 대한 특별 환불 및 변경 방안을 잇따라 발표했다. 현지 항공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자제 권고 이후 약 50만장의 일본행 항공권이 취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인 여행을 전담하는 동일본국제여행사(East Japan International Travel Agency) 관계자는 “지난 17일 전체 예약의 약 10%가 취소됐고 18일에는 이 비율이 70%로 급증했다”며 “나머지 예약 또한 관광객들이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본 민간 연구소 노무라소켄의 기우치 다카히데 연구원은 이번 조치가 1년간 유지될 경우 일본의 관광수입 약 1조7900억엔(약 16조8401억원)이 감소하고, 실질 GDP가 0.29%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도 다시 중단됐다. 중국은 지난 5일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금지됐던 수입을 일부 재개했으나, 일본 총리의 발언 이후 일본이 약속한 안전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출 재개 약 보름 만에 다시 제동을 걸었다.
마오닝 대변인은 “대만 문제 등 주요 원칙적인 문제에 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잘못된 발언으로 인해 중국 국민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일본산 해산물이 중국에 수출되더라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융첸 상무부 대변인 또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관련 오언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며 “일본이 잘못된 언행을 철회하고 중국에 대한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며 책임있는 자세로 양국 경제·무역 협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군사적 메세지도 노골화되고 있다. 중국군은 소셜미디어(SNS) 계정 등을 통해 일본을 비판하는 선전 영상을 연이어 공개하며 실사격 훈련과 항공모함 편대 운용 장면을 의도적으로 노출했다.
지난 19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관영 언론매체들은 중국의 세번째 항공모함인 ’푸젠함‘이 실사격을 포함한 첫 해상 실전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첫 해상 실전훈련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분석가들을 인용해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주변 해역에서 새로운 군사활동이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이 일시적 갈등이 아닌 구조적 대립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정치 리스크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동북아시아 담당 수석분석가 제레미 찬(Jeremy Chan)은 “다카이치는 의도치 않게 스스로를 틀에 가두었고, 당장의 탈출구는 사실상 없다”며 “다카이치 총리의 임기 동안 아시아 양대 경제 대국 간의 관계가 ‘긴 겨울’을 겪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강은수 기자 gangshu@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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