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美 의약품 관세 최대 250% 가능성
제약사 잇따라 현지 투자·생산 거점 확보
기술력만으론 안전지대 없어
김동주 보건바이오부 팀장
김동주 보건바이오부 팀장

| 한스경제=김동주 기자 | “미국 시장은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시장이다. 미국 정부가 원한다면 메이드 인 USA를 생산해 판매할 것이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미국의 의약품 관세 부과 조치를 앞두고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냈다. 셀트리온은 현재 바이오시밀러 11개 제품을 미국에 판매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22개, 2033년에는 41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미 간 상호 관세 협상이 어렵사리 타결됐지만, 의약품 분야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이번 합의로 상당수 품목의 관세율이 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은 발표가 미뤄진 채 이달 중 최종 결론이 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다음 주 정도(within the next week or so)”에 품목별 관세를 더 발표할 예정이라며 대상 품목으로 의약품을 언급했다. 특히 "처음에는 의약품에 약간의 관세(small tariff)를 부과하지만, 1년이나 최대 1년 반 뒤에는 150%로 올리고, 이후에는 250%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의약품 관세와 리쇼어링(미국 내 생산시설 이주) 정책에 강한 의지를 보인 만큼, 이 같은 발언은 외국 제약사들이 미국 밖에 있는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감안해 그 이후 관세를 올리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문제는 적용 범위와 수준이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원료·완제, 오리지널·제네릭, 케미컬·바이오 등 어떤 구분이 적용될지도 불명확하다. 업계는 미국이 EU와 무역협정에서 합의한 15% 수준에서 시작될 가능성을 점치지만, 이는 최혜국 대우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관세 폭탄 우려에 글로벌 제약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로슈가 각각 500억 달러(약 69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일라이 릴리·존슨앤드존슨·노바티스 등도 대규모 현지 증설 방안을 잇따라 검토 중이다.

국내 기업들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셀트리온은 미국 수출분 2년분을 미리 확보하고 현지 위탁생산(CMO) 계약을 체결했다. 또 최근 미국 바이오의약품 공장 인수 입찰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올해 연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약 7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주시하며 현지 공장 인수나 공장 신설 등을 모두 검토하고 있으며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SK바이오팜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 의약품 관세에 대응 가능하도록 조치를 마쳤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최혜국 대우 유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관세 부과 시 단기적으로 가격 경쟁력 약화, 생산원가 상승, 공급망 혼란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다만 “한국은 글로벌 제제기술과 제조역량을 갖춘 만큼,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전략에서 중국을 대체할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무역분쟁으로 국한할 것이 아닌, 그동안 FTA 체제에서 관세 면제를 누려온 K-제약바이오가 ‘기술력과 품질만으로는 안전지대를 확보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 사건이다. 미국의 통상 정책은 자국 산업 보호와 고용 창출이라는 정치 논리에 철저히 종속돼 있으며 관세는 그 핵심 수단이다.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이미 항체의약품, 바이오시밀러, 원료의약품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글로벌 힘의 구도 속에서는 협상 카드가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며 현지 기업과의 합작 또는 인수합병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뿐이다. 그러나 이 선택조차도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 템포와 정치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도적 대응’이 아닌 ‘방어적 적응’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는 결국 K-제약바이오의 글로벌 전략이 단순히 ‘좋은 약을 만들고 잘 파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기도 하다. 기술·품질 경쟁력 위에 정치·경제·외교 리스크를 읽어내는 감각과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국제 네트워크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또 다른 관세 폭탄이나 규제 장벽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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