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무역적자·부가세·국내규제 명분 삼을듯…"다른나라에도 적용" 트집잡기
현대차그룹, 美 생산 확대에 성김 사장까지 '분주'
“억지 주장에도 속수무책” "카운터 파트 없어 대응 한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한스경제=최창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폭탄'의 다음 타깃을 자동차로 정조준했다. 대(對)한국 무역 적자와 함께 한국의 부가가치세 체계, 전기차·배출가스 규제 등을 들먹이면서 관세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커지자 산업계 전체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억지 주장이라는 시각과 함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다만 탄핵 정국에 따른 카운터파트 부재로 가시밭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 韓 규제까지 명분 삼은 美…내정간섭 수준

17일 자동차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2일부터 자동차 관세 본격화를 예고했다. 앞서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수입 자동차로 이를 확장할 것을 암시했다. 앞선 1기 행정부 당시와 똑 닮은 행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 적자, 상대국의 무역 장벽 등을 이유로 동맹국까지 관세 폭탄을 투하해왔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자동차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한국에 대한 무역 적자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미국으로 153만5616대의 차량을 수출했다. 금액으로는 52조8000억원에 달한다. 반대로 미국은 한국에 4만7190대를 수출했다. 3조원에 불과한 수준이다. 대한 무역적자가 50조원에 달한다는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부가가치세(VAT)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 한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전 과정에 걸쳐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제품을 생산한 뒤 최종 소비자가 소비하는 과정에 부가가치가 생긴다는 명목이다. 한국은 10%, 유럽은 평균 22%의 부가세를 붙인다.

미국은 부가세가 없는데 트럼프는 이 점을 문제삼고 있다. 미국산 제품 가격이 상승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부가세가 아닌 6.6%의 판매세를 매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각) SNS에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부가세 시스템을 사용하는 나라들을 (대미) 관세를 가진 나라와 비슷하게 여길 것"이라고 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와 함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문제 삼은 배출가스 관련 부품 무작위 검증 제도,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지난해 언급한 전기차 관련 보조금 수립 절차, 주행거리 시험 방식 등 여러 요인을 들먹이면서 관세 폭탄을 투하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특히 암참은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 관련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사전 논의와 검토 절차가 생략·축소돼 매년 국내 시장에 전기차를 보급해야 하는 업계의 대응·준비가 매우 미흡하다"라거나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 에너지효율 등급제, 전기차 인증·보조금 평가 등을 두고 "규제들이 사전 조율 없이 부처별로 무분별하게 신설되고 있다"는 다소 과도한 지적을 제기한 바 있다.

◆ 성김 현대차 사장 미국행…국정 공백에 기업 피해 커질 듯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측 주장이 억지라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가 강조한 부가세를 비롯한 모든 규제는 미국 등 수입산과 국산을 포함한 모든 차량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부가세, 전기차·배출가스 등 규제는 미국차뿐만 아니라 모든 차량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BMW·벤츠 등에 비해 미국차의 경쟁력이 낮은 걸 두고 규제를 탓하는 모순적인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부두/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부두/ 현대자동차그룹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도 “환경이나 전기차 관련 규제는 한국, 일본, 중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의 기준이 대동소이하다”며 “이를 두고 우리 규제가 강하다는 것은 억지”라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이어 “부가세 역시 미국이라고 예외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트집잡기가 아닌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개별적인 대응과 동시에 사절단을 꾸리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관세 폭탄의 사정권에 들어온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본격 가동하면서 연간 30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 등을 더하면 최대 110만대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다.

인적 인프라도 가동도 속도를 낸다. 성김 현대차 사장은 오는 19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의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에 동참해 미국 워싱턴DC를 찾는다. 성김 사장을 비롯한 사절단은 백악관 고위 당국자, 의회 주요 의원 등과 접촉해 통상 정책을 논의할 전망이다. 또 '한미 비즈니스의 밤'에서 미국 투자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주별 미팅에 나설 계획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국정 마비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은 상당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은 초유의 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사실상 국정 공백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대면은 물론 통화조차 하지 못한 실정이다. 김필수 교수는 "협상 카운터파트가 없는 점은 큰 문제"라며 "관세가 실현될 경우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우려했다. 이호근 교수는 “정부의 정책 지원 부재가 사태를 지속적으로 끌고 있는 모습”이라며 “미국이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을 펼쳐도 효율적으로 대응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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