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 3년 만에 VLCC 수주 재개...“시장 회복 기대”
[한스경제=김우정 기자] 미국이 러시아와 이란산 석유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지난 3년간 침체됐던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시장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재로 인해 글로벌 시장 내 유조선 공급이 줄어들면서 VLCC 운임이 급등하고 있고, 중국과 인도가 대체 원유 확보를 위해 중동·아프리카산 원유 구매를 확대하면서 VLCC 수요가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월10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러시아산 석유를 몰래 수송하는 ‘그림자 함대(Shadow Fleet)’ 소속 유조선 183척에 대한 대규모 제재를 발표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로 수출길이 막히자 다른 국가의 선적으로 위장한 '그림자 함대'를 이용해 원유를 운송해왔다.
지난 20일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종식에 협력하지 않으면 러시아와 원유 거래를 하는 제3국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처를 논의하고 있다. 또한 이란에 대한 압박을 ‘최대’로 강화하겠다는 안보 각서에 서명했다. 해당 각서에는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수억달러 규모의 이란산 원유 수백만 배럴을 중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한 국제 네트워크를 제재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를 피하려는 ‘그림자 함대’의 상당수는 인도와 중국으로 석유를 운송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7일 중국 산둥항만그룹(Sandong Port Group)은 관할 항만에 미국 제재를 받은 유조선의 입항을 전면 금지했다. 산둥항은 대표적으로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주요 허브 역할을 해왔다.
러시아산 원유는 주로 아프라막스(Aframax, 8~12만DWT)와 수에즈막스(Suezmax, 12~20만DWT)급 선박을 통해 운송되는데, 이번 제재로 인해 이들 선박의 운항이 위축되면서 VLCC(20~32만DWT) 수요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유조선 제재는 러시아와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시장에서는 공급 감소 효과로 인해 VLCC 운임이 급등하는 현상이 연쇄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원유 수요는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재를 받는 선박이 시장에서 제외되면서, 이용 가능한 선박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발틱해운거래소(Baltic Exchange)에 따르면, 미국 제재 발표 후 중동-중국 노선의 VLCC 하루 운임은 일주일 만에 112% 급등해 5만7589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 걸프-중국 노선 운임도 102% 상승했으며, 서아프리카-중국 노선 또한 90% 증가했다.
러시아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이었던 중국과 인도는 원유 공급 차질을 메우기 위해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원유 확보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10일(현지시간)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 산하 유니펙(Unipec)은 중동산 원유 수송을 위해 유조선 8척을 예약했다. 이어 15일 추가로 10척을 확보하는 등 제재 발표 이후 총 23척을 예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수요 증가로 인해 1월15일 기준 중동-중국 노선(TD3C)의 VLCC 운임은 3만7800달러로 치솟았으며,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VLCC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올해 신규 인도될 VLCC는 5척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도 인도된 신규 VLCC는 단 1척에 그쳤다.
하루 약 200만배럴의 원유를 운반할 수 있는 VLCC가 부족해지면서, 장거리 노선에서 비용 효율성이 낮은 소형 선박들의 운임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중개업체 심슨스펜스영(SSY)에 따르면, 약 100만배럴을 운반하는 수에즈막스급 선박 운임도 수요 증가와 공급 부족으로 상승했다.
국내 조선업계도 VLCC 시장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은 VLCC 6척, 한화오션은 7척을 수주하며 3년 만에 VLCC 수주를 재개한 바 있다.
한화오션은 “최근 VLCC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며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자사의 수혜가 기대된다”며 “탄소 규제 강화로 석유 사용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원유 운반선 발주가 줄었다. 그러나 오히려 세계 석유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으며 유조선 폐선 주기도 맞물려 유조선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선박중개업자 깁슨(Gibson)은 “낮은 신규 주문량과 미국의 제재 조치로 인해 탱커(유조선) 시장에서 VLCC가 주목받고 있다”면서도 “OFAC 제재로 인한 초기 운임 상승세가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관세 부과 정책이 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VLCC 시장의 전망이 반드시 장밋빛이지만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깁슨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보충, 석유수출기구(OPEC+) 생산량 조정, 원유 수요 전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변수"라며 "VLCC 시장은 몇 년 전보다 개선됐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정 기자 yuting403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