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중립없다"…'극단적 정치 문화' 부추길 우려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제22대 국회 개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반기 국회의장직 경쟁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4명의 후보가 공개적으로 도전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와 호흡, 훼손된 삼권분립 수호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다만 22대 국회 첫 국회의장 후보들이 연일 '중립'과 거리를 두는 강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국회의장의 중립성 원칙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국회법 20조의2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입법부 수장으로 국가 의전 서열 2위에 해당하는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일을 한다. 즉 특정 정파나 정당이 아닌 국회를 대표한다는 의미다.
지난 2002년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조항이 국회법에 신설됐다.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부터 '무소속 조항'이 적용됐는데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다음 국회의장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킬 것이 아니라 범야권에 192석을 몰아준 총선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쉽게 말해 정치적 균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야권에 유리하게 국회의장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직에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의 출사표에서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당내 최다선인 6선에 오른 추미애 당선자는 지난 11일 라디오에서 "대파가 좌파도, 우파도 아니듯 국회의장도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5선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 (그 토대를) 깔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6선 조정식 의원은 "이재명 대표,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돼야 국회를 이끌 수 있다"고 했다.
5선에 오른 우원식 의원(현 4선)은 25일 국회의장 출마선언문에서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도 넘어서겠다"며 "윤석열 정권의 사법권 남용, 거부권 남발로 훼손된 삼권분립의 정신과 헌법정신을 수호하는 것이 국회와 국회의장의 숙명이다"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장이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적 균형감을 갖추고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불문율과 관련이 있는 만큼 이러한 선명성 경쟁이 자칫 정치 문화를 더욱 극한으로 내몰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논평에서 "입법부의 수장이 되려는 국회의장 후보라면, 여야 협치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국정운영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나"라며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는 강박은 잠시 내려놓고, '왜 당적 보유를 금지했는지', '입법부의 대표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달라"고 질타했다.
나경원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회의장 도전 의사에 대해 "민주당이 하나라도 양보하겠나"라며 "지금 기세가 저렇게 등등한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조응천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회의장은 여야가 정파적 이익에만 몰두해 극한으로 대립할 때 잠시 멈춰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다"라며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국가 의전서열 제2위인 국회의장의 위상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경선 분위기가 뜨거워지자 당내에서 공개적인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박지원 당선인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의장 관례가 중립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정치다"라며 "나는 민주당에서 나왔으니까 민주당 편만 든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호진 기자 hoo100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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