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 발주잔량 최대치 경신...1천만TEU 목전
호황으로 현금 풍부한 선사, 탈탄소 규제 맞춰 발주
용선료 높은 수준...공급과잉 우려에도 멈추지 않아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연초부터 계속된 글로벌 신조선 발주량 감소 현상에서 유독 컨테이너선만 예외를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도 공급과잉인 컨테이너선의 대량 신조 발주가 이어짐에 따라 전 세계 조선소에 발주된 컨테이너선의 발주잔량(Orderbook)이 이미 역대 최대치를 넘어섰고 1000만TEU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정기 선사들이 풍부한 현금을 컨테이너선 신조에 계속 투입하고 있고 국제해사기구(IMO)의 탈탄소화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노후선 대체 및 친환경 선박 발주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9일 프랑스의 해운·조선산업 분석 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발주잔량은 995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최근 진행 중인 선사와 조선소 간 신조 발주 협상까지 완료될 경우 조만간 1000만TEU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컨테이너선 발주잔량의 역대 최고 기록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초호황이 이어졌던 2022년의 719만TEU였다. 이전 최고 기록 역시 호황기였던 지난 2008년 712만TEU로 장기간 이 기록이 유지되다가 14년 만인 2022년에 뒤집혔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체결된 컨테이너선 건조계약 척수는 600척 정도다. 이 중 최종적으로 건조계약이 최소된 것과 인도된 선박들을 제외하고 발주잔량에서 순증가를 기록한 선복량은 약 280만TEU에 달한다.
현재 발주잔량 995만TEU는 운항 선대의 30.4%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많은 발주잔량에도 글로벌 주요 선사들과 선주들은 여전히 신조 발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원인으로 알파라이너는 지난 5년간 호황이 이어지면서 정기 선사들이 막대한 유동성을 확보해 발주 여력이 충분하고 탈탄소화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노후선 대체 발주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대만 정기 선사인 완하이라인은 지난 5월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메탄올 사용이 가능한 이중연료(dual-fuel) 추진 1만60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2척씩 분산 발주했다.
또 다른 대만 선사 에버그린은 지난해 24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6척을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CSSC) 산하 조선소에 발주한 데 이어 올해 초 2만4000TEU급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을 한화오션에, 5척은 CSSC의 자회사 광저우조선인터내셔널(GSI)에 발주한 바 있다.
노후선 폐선과 IMO의 현재 운항 선박에 대한 유해 물질 저감 정책(규제) 시행 등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친환경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신조 발주 움직임은 선복량 과잉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스 국적 정기 선사인 CMA CGM도 2029년까지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선대를 162척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중 24척은 메탄올 추진선이고 나머지는 LNG 추진선이다.
알파라이너는 “선단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선사들은 여러 서비스 항로에서 선복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며 “이로 인한 컨테이너선 용선료 및 중고선 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인데 이러한 요소들 역시 선사들이 신조 발주를 계속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컨테이너선의 신조 발주가 증가하면서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조선소들의 납기 슬롯 상황(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도크를 비롯한 가용 생산설비)은 2028년까지 거의 채워진 상태다. 통상 선주사가 조선소에 신조 발주 후 인도받기까지 2년 정도 소요되지만 건조 슬롯이 포화 상태라서 최근에는 2029~2030년 납기까지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파라이너는 글로벌 정기 선사들이 신조 발주를 멈추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선사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물동량 증가가 공급량 증가를 상쇄할 것으로 기대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은 세계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에서 출발한다. 인도와 서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는 향후 10년 안에 수백만명의 소비자가 새로 등장해 중진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을 오가는 컨테이너 물동량이 향후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란 선사들의 기대가 공급과잉 상태인 컨테이너선의 추가적인 신조 발주로 이어진다는 것이 알파라이너의 설명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인도를 비롯해 세계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 속도가 필연적으로 컨테이너 해상운송 운임의 수익성을 담보하는 수준으로 유지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알파라이너의 분석에 반론을 제기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향후 해상운송을 통한 컨테이너 물동량의 평균 성장률을 6%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운항 중인 컨테이너선이 지금처럼 수에즈운하 통과가 아닌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 운항한다면 6% 성장률로도 현재 컨테이너선 발주량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이러한 현재 상황이 역전되면 선복량 과잉은 시장에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알파라이너는 “세계 경기가 침체되거나 홍해사태가 해소돼 수에즈운하 통항이 재개되면 컨테이너선의 심각한 선복 과잉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