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임준혁 차장
산업부 임준혁 차장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국내 조선 산업이 지금처럼 국민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는 현상은 단군 이래 최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와 통화하며 나눈 내용이다.

현재 한국 조선은 내부뿐 아니라 G2의 한 축인 미국으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다른 한 축인 중국은 이러한 현실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한국을 파트너로 지목했다. 올해 초부터 미국의 이러한 신호를 간파한 우리 정부는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서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미국에 제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조선산업은 세계 1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미국은 하루에 한 척씩 선박을 건조했지만 지금 미국 조선소는 상당히 황폐해졌다"고 언급했다.

1944년부터 종전 후인 1945년 12월까지 미국 각지의 조선소에서 98척이 건조돼 취역 후 태평양 전선에 투입 경험이 있는 기어링(Gearing)급 구축함(DD)이 있다. 만재배수량 3000톤급인 이 구축함은 1960년대까지 미 해군에서 운용되다 1970년대 초 퇴역했다. 한국 해군은 1972~1981년 이 구축함 7척을 중고선으로 도입해 20세기 말까지 운용했다. 현재 50대 이상의 예비역 해군 수병들은 이 구축함을 대표 ‘1급함’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함장 경력을 마치면 제독으로의 진급이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이들에게 2025년 마스가는 말 그대로 ‘격세지감’인 셈이다.

중국은 20년 남짓한 기간 글로벌 조선시장 점유율을 70%대로 끌어올렸다. 한국 조선은 양적인 측면에서 사실상 시장을 중국에 내주고 높은 기술력과 고부가가치 선종 수주 독식으로 불안한 세계 최고를 유지해 왔다. 마스가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한국 조선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신시장을 열어줬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스가는 한미 양국의 산업과 안보를 함께 강화할 잠재력이 크다. 미국은 함정 정비·건조 능력에서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고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상호 윈윈하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국가 간 협력 프로젝트임은 분명하다.

마스가는 중국의 해양력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 중 일부라는 태생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마스가 참여를 희망하는 국내 주요 조선사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미 해군을 타깃으로 하는 ‘방산’에서 찾는 상황을 불러왔다. 조선 3사는 물론 HJ중공업, 케이조선, SK오션플랜트, 심지어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사인 HSG성동조선까지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7월 말부터 한 달간 당·정 일각에서 국내 조선소 일부를 정부가 인수한 후 미 해군 MRO ‘특화 조선소’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31일 '한미 간 조선산업의 협력 증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마스가 지원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률안에는 국내에 미 해군 함정 MRO를 위한 특화단지 지정이 포함돼 있다.

한 미국 전문가는 이 법률안이 마스가가 직면한 미국 내 구조적 장벽과 불확실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액션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마스가 지원법은 법안 통과시 (한국의) 국유재산 무상대부, 기반 시설 설치 비용 전액 부담, 각종 특례 제공 등을 명문화할 가능성이 높다. 마스가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미국 내 법·정치적 제약이 풀리기 전임에도 한국이 먼저 모든 것을 내주는 위험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마스가 성공의 관건은 미국 의회라는 목소리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이 아무리 확고해도 의회가 예산을 막고 법적 장벽을 유지하면 마스가 실행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20~30년째 상·하원 군사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핵심 의원들과 조선소를 지역구로 둔 정치인들과의 장기적 관계 구축이 필수라는 조언도 새겨들어야 할 시점이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상생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합리적 사고 및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미국의 절박함을 인정하되 이를 우리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은 곤란하다. 미국의 법·제도 정비 완료를 시작으로 함정 MRO→개조→신조 단계를 거쳐 장기적 관점에서 성과 공개와 같은 투명성의 원칙하에 신중한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마스가 프로젝트와 관련한 한미 양국의 구체적 합의 사항은 아직 공식 발표 전이다. 최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한국 조선사의 지분을 미국 정부가 보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불확실성의 하나일 뿐이다. 미국의 절박함은 우리에게 분명 기회이지만 이를 현실로 만드는 힘은 냉철한 판단과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된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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