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건조 선박 대미 수출 막아온 규제 철폐 가능성 주목
美 의회 ‘존스법·반스-톨레프슨 수정법’ 개정 초기 단계
정치권 ‘노조 반발·안보 군사기밀 문제’ 의식...미온적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내 조선소에서 만든 '한국산' 선박을 구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한국 입장에서 가장 유리하고 매력 있는 투자이자 거래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을 구매해 미국적 상선이나 해군 함정으로 운용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미국 내 관련 법의 개정이나 신설 등 규제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낱 ‘희망사항’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이 여전하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시작하면서 "오늘 우리는 선박 건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한국에서 선박을 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이 미국에서 우리 노동자(people)를 이용해 선박을 만들게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부 선박을 한국 조선소에 직접 발주하되 나머지는 한국 조선업체들이 대미 투자를 통해 미국에서 건조하게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미 정상회담 다음날인 26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의 한화 필리조선소 방문에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동행한 것도 한미 조선협력이 대미 투자에도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한미 조선업 협력이 수면 위로 부상하며 국내 조선사들이 가장 우려했던 점은 미국의 현지 생산 여건이 너무 열악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거나 조선소를 새로 짓더라도 당장 한국에서 건조한 것과 같은 고품질의 선박을 경제성 있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미국 조선소의 낙후된 생산설비야 신규 투자로 개선한다고 해도 숙련된 노동력을 키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한국처럼 조선소와 여러 기자재 업체가 한 지역에 집중돼 있는 ‘클러스터’화도 거의 전무해 튼실한 ‘조선산업 생태계’ 조성이 요원했기 때문이다.
이에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초기에는 미국이 한국 조선소에 일부 선박을 발주하거나 한국에서 선박 공정의 상당 부분을 모듈형으로 제작한 뒤 미국으로 보내 최종 조립만 하는 방안 등이 제기돼왔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산 선박 구매는 한국 조선사에 가장 유리하고 미국 입장에서도 필요한 선박을 가장 빨리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손꼽힌다. 문제는 미국내 정치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관세 협상 타결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한미 조선 협력의 배경에는 미국에 갈수록 위협이 되는 중국의 해군력에 대한 경각심이 자리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면 해군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냉전 이후 조선업 투자를 소홀히 해 온 데다 정부의 보호와 예산에 의존해 온 미국 조선업체들이 오래전에 경쟁력을 상실함으로써 함정 건조·수리 역량이 크게 퇴보했다.
심지어 유사시 물자 수송에 동원되는 상선조차 제때 충분히 건조할 수 없기에 미국이 주요 동맹이자 조선 강국인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나왔다. 이에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국과 조선 협력을 추진했으나 외국산 선박 구매를 제한하는 각종 규제와 조선소를 지역구로 둔 미국 정치인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미국 의회에서는 연초부터 동맹국과의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존스법’과 ‘반스-톨레프슨 수정법’ 등 외국 조선업체의 미국 선박 시장 진출을 막아온 각종 법을 개정·폐지하자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의 통과는 녹록지 않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1월 119대 미 연방의회 개원 이후 최근까지 3건의 조선업 지원법이 발의됐다. ▲미국 군함의 해외 건조·수리를 금지하는 반스-톨레프슨법을 수정하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2월 발의) ▲미국 연안을 운항하는 선박의 자국 내 건조를 강제하는 존스법을 수정하는 ‘상선 동맹국 파트너십 법’(8월 발의) ▲미국 조선소 투자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미국을 위한 선박법’(4월 발의) 등이다.
통상적으로 미 의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위원회 심사→본회의 심의→양원 조정 및 표결→대통령 서명’ 등 네 단계를 거쳐 법적인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가장 최근 발의된 ‘상선 동맹국 파트너십 법’을 제외한 두 법안은 아직 심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은 발의 당일 두 차례 낭독을 거쳐 상원 군사위원회로 회부됐다.
‘미국을 위한 선박법’ 역시 두 차례 낭독 후 상원 상업·과학·교통위원회와 하원 교통·인프라위원회 산하 해안경비대 및 해상운송소위로 각각 넘겨졌지만 아직 청문회 등 심사를 위한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세 법안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 의회가 신속한 입법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미국 내 노조의 반대와 안보·군사 기밀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안보를 최우선에 두고 판단한다”며 “아무리 한국이 동맹국이라도 해군 함정 무기체계가 타국으로 유출될 수 있는 법 개정을 서두를 이유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2016년 전후처럼 중국 조선업체가 한국 조선사 퇴직자를 대거 스카우트할 가능성도 미국으로서는 경계하는 부분”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 정책의 고려나 관행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인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한국산 선박을 구매하겠다는 의지를 공식 외교 석상에서 밝힌 만큼 앞으로 행정 권한을 활용해 한국산 선박 구매를 허용하거나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을 설득해 법 개정을 관철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조선 등 해양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범부처 계획 입안과 백악관 조선사무국 설치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