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난항 예상…법률·협상 변수 촉각
4대그룹 및 경제단체장 포함 최소 16명 대거 동행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와 더불어 ‘지분 참여 요구’라는 이중 압박을 가하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 속에서 25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어떠한 결정적 영향을 미칠지, 산업계가 극도의 긴장감 속에 회담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 한미 무역 합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비워둔 통상 사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언급될지 주목된다.
◆ 삼성·SK 긴장감 고조...전례 없는 '이중압박'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미국 시장 내 주요 고객사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익 구조의 상당 부분이 미국 내 판로에 의존하는 만큼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지분 참여 요구’다.
이번 사안의 파장은 단순 무역 갈등을 넘어 기업 경영권과 기술 주권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관세는 제품 경쟁력에 직접적 타격을 주고 지분 참여 요구는 투자 구조와 경영 결정의 독립성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익보다 국익을 고려한 미국식 산업 전략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이 미국의 핵심 동맹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까지 더해져 긴장은 당분간 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새정부 한미 정상회담이 ‘산업 외교 시험대’
이러한 배경 속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현안을 넘어 산업 외교의 성격을 띠게 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최근 “정상회담에서는 공급망 안정성, 경제안보, 기술 협력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세 및 지분 참여 문제는 양국 정상 간 대화에서 직접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협상에서 바라는 가장 긍정적인 결과는 미국이 관세율을 단계적으로 낮추거나 지분 요구를 권고 차원으로 후퇴시킬 경우다. 이는 미국이 동맹 관리와 대중 견제 사이 균형을 택하는 선택지로,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에도 긍정적 명분이 될 수 있다.
부분 합의 시나리오도 현재로선 나쁘지 않다. 관세 완화와 지분 요구 중 하나만이라도 조정이된다면 여전히 일부 부담을 안고 가게 되지만 최소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기존 요구를 강경하게 고수할 경우다. 이럴 경우 한국 정부와 기업의 반발은 불가피하며 이는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한미 동맹 차원에서도 균열이 불거질 수 있어 정치적 파장까지 예상된다.
◆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은?
우리 정부와 업계는 다층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 지분 참여 요구가 사실상 경영 간섭이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하는 한편, 세제 개편과 국가반도체 전략기금 등 자구책으로 기업 부담을 줄이려 한다.
기업 차원에서는 생산 거점 다변화가 빠르게 거론된다. 미국 외에도 유럽, 동남아, 인도 등에 신규 투자 계획이 검토 중이며 이는 협상에서 지렛대를 확보하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차세대 반도체 기술 내재화를 가속화해 미국의 조건 없이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사안은 해외 동맹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대만, 유럽 주요 반도체 기업들 역시 향후 미국이 같은 조건을 요구받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사실상 ‘향후 반도체 지정학 경쟁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특히 지분 참여 요구가 선례로 굳어질 경우 이는 단순한 투자 조건이 아니라 ‘산업 주권 포기’에 해당한다는 우려도 크다. 반면 미국이 동맹국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선회한다면오히려 새로운 협력 모델이 정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불확실성' 터널 속 K-반도체, 산업 주권 시험대 올라
이번 정상회담은 K-반도체 산업이 맞이한 정치·경제·기술이 얽힌 거대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관세와 지분이라는 전례 없는 이중 압박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을 넘어 경영권과 기술 독립성, 나아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줄 사안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지분 요구가 관철될지는 미지수이나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향후 업계의 대미 전략과 투자 방향,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분명한 건 이번 협상이 무난히 타결된다면 위기가 기회로 전환될 수 있지만 반대로 갈등이 격화된다면 한국 반도체는 장기간 불확실성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2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글로벌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예인 기자 yi411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