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관세·지분·정치 변수 얽힌 K-반도체...‘우호적 분위기’ 기대
트럼프 정부의 적극 개입 기조 속 전략적 신중 선택
삼성·SK는 계획대로 투자 진행…새로운 협력기회 모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기대했던 반도체 분야의 추가 투자 내용이 발표되지 않자 산업계와 시장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철강,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산업군의 현안이 거론됐으나 반도체 분야에선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양국 정부가 전반적 경제 협력의 긍정적 분위기를 강조한 것과 달리 반도체 분야의 실질적 성과는 사실상 다음 단계로 미뤄진 셈이다. 그러나 회담이 우호적으로 마무리된 만큼 반도체 분야 대미(對美) 투자 확대 계획 수립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반도체 투자’ 빠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대기업과 미국 주요 기술기업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했지만 신규 투자나 공장 증설에 관한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수요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 발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근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23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맺고 애플에도 아이폰용 이미지센서를 추가하면서 업계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소 수조원대의 추가 설비 계획이나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 발표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메모리 사업에도 삼성전자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사업과 관련해 엔비디아로의 HBM 납품 관련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관련 한미 협력의 구체적 플랜이 나오지 않은 것은 여전히 남은 불투명성 탓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구체적 언급을 피하며 “협력 기반은 유지하되 투자 결정은 시간을 두고 검토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측 관계자는 “회담 자체는 한미 간 공급망 안정과 기술 동맹의 틀이 확인된 자리였다”며 “다만 구체적 사업 투자는 각 기업의 전략적 판단이라 단기간에 확정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인텔 10% 확보한 美 정부…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에 대한 100% 품목관세를 예고하는 한편 미국 내 반도체공장 신·증설을 노골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액 출자로 전환하며 10% 지분을 획득해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와 같은 거래를 많이 한다. 나는 (이 같은 거래를) 더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칩스법 보조금을 받는 외국 기업에도 지분 인수 시도를 포함해 각종 경영 정책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기존 양국 관세협상 결과를 재확인했을 뿐 반도체 품목관세나 반도체 기업 지분 인수 등에 대한 추가 논의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 동맹 유지, 투자는 숙성 단계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공급망 동맹의 틀을 재확인시키는 자리였다. 단기적 투자 발표 부재는 협력 의지의 후퇴라기보다는 이해관계 조율 과정으로 보인다. 공급망에 대한 주요 기업들 간의 협업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어 향후 투자 확대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올해 한미정상회담의 ‘반쪽 성과’는 한미 반도체 협력의 전환점이 아닌, 향후 정책·투자 환경이 우호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존 계획대로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되 현지 투자 확대 기조에 따라 새로운 협력 기회를 모색할 방침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확대를 위해 총 370억 달러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에 2나노미터(nm) 등 최첨단 파운드리 팹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1공장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연내 본격적인 설비투자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도 연내 착공을 목표로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을 확충한다.

결국 양국 간 남은 과제는 투자 유인책과 기업 경영권 보장 문제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의 문제다. 전문가들도 이번 회담의 무(無)투자 발표를 실망스러운 신호라기보다 기업들의 전략적 신중함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업계가 선택할 다음 수순은 관세, 보조금, 지분 조건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달려 있다”며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둘러싼 양국 협상은 앞으로도 국제 경제의 최대 현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예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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