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업체들, 화석연료 발전소 폐쇄 기한 늦춰
“청정에너지 전환 늦어질 수 있어”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세계 주요 데이터 제공업체들의 전력 수요 급증이 기후에 새로운 우려를 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화석연료 사용도 단기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후 화석연료 발전소 운영이 연장되면서 친환경에너지 전환이 늦어질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데이터센터의 높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친환경에너지 전환을 늦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3분의 1가량이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가 대규모로 가동되면서, 전력사들이 가스 발전소를 새로 짓거나 기존 화석연료 발전소의 폐쇄를 미루고 있다. 폴란드, 독일, 말레이시아에서는 전력 공급을 위해 석탄 사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와 규제당국, 분석가들이 로이터에 전했다.
로이터통신이 미국 주요 전력 회사들의 최근 실적 발표를 분석한 결과, 데이터센터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러 회사가 화석연료 발전소의 가동 기간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설비를 증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북부 버지니아는 세계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이다. 이곳에 전력을 공급하는 도미니언 에너지는 추가 전력 공급원으로 재생에너지가 아닌 천연가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엔터지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을 시작했다. 754MW 규모의 이 발전소는 미시시피주(州)에 건설 중인 아마존의 데이터센터 2곳에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인디애나, 오하이오, 버지니아주 등 데이터센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나이소스는 2029년까지 193억달러(약 27조200억원)에 달하는 자본 투자 계획의 절반가량을 천연가스 시스템 개선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터스 캐피탈의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 롭 서멀은 원활한 전력 공급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천연가스라고 밝혔다. 서멀 매니저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데이터센터를 위한 완벽한 에너지 해법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데이터센터가 향후 10년 동안 미국의 천연가스 수요를 하루 30억~60억ft³(입방피트)까지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청정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RMI는 천연가스 수요가 늘어나면 미국의 탄소 배출 실적을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존 크레이츠 RMI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진행될 전기화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건 그저 예고편에 불과하다”며 “지금 단계에서 가스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늘리는 선택을 한다면,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석탄 사용이 재개될지도 주목받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일부 유럽 국가는 석탄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례로 폴란드는 석탄 등 사용해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폴란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석탄 비중을 줄이고 있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에너지믹스에서 석탄 비중은 여전히 60%를 상회한다. 에너지믹스는 전력을 어떤 방법(원천)으로 생산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IEA는 아일랜드에서도 국가 전체 전력 소비의 20% 이상을 데이터센터가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아일랜드 전력회사인 에어그리드는 650MW 규모의 임시 비상 발전 설비를 확보하고, 노후 발전소 폐쇄를 연기해 전력 수요를 충당할 계획이라고 로이터에 전했다.
또한 ESB 그룹은 아일랜드의 유일한 석탄 발전소인 머니포인트 발전소의 폐쇄 시점을 2025년에서 2029년으로 연장했다. 다만 이 기간 석탄 대신 연료유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료유는 석유 제품 중 에너지를 얻기 위한 연료로 사용되는 종류를 말한다. 휘발유, 등유, 경유, 벙커시유, 제트유가 여기에 포함된다.
독일에서는 올해 마이크로소프트가 32억유로(약 4조6000억원)를 투자해 함바흐 석탄 광산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가 전력 공급을 석탄에 의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일부 데이터 기업들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석탄과 가스가 주를 이루는 기존 전력망에서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고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가 로이터에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은 전력 시스템의 탈탄소화를 목표로 하는 각국 정부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고 통신은 분석했다. 또한 데이터 기업들이 발표한 친환경 공약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조달하고 청정에너지와 탄소 상쇄 크레딧을 통해 탄소 배출을 제로화(0)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전력 공급 외에 다른 곳에도 사용해야 할 청정에너지를 데이터센터에만 사용하게 될 것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아울러 데이터 제공업체들이 소형모듈원자로나 재가동된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며, 실현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메타의 짐 컬리넌 대변인은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려면 더 많은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며 “공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전력회사가 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로이터는 데이터센터의 화석연료 의존도 심화가 청정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산업이 2030년까지 약 25억t(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러시아의 연간 배출량에 맞먹는 규모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