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미중 AI 경쟁·제조업 복귀 등으로 저렴한 전력 수요 증가
미국 전력 소비 사상 최고...“2029년까지 16% 더 증가 가능”
조 바이든 정부 기후 대응 목표 달성 ‘위협’
미국의 폭발적인 AI 성장으로 천연가스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대응 목표 달성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폭발적인 AI 성장으로 천연가스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대응 목표 달성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미국에서 인공지능(AI)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 내 전력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이 지금보다 더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3일(현지시간) AI가 미국의 기후 대응 목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컨설팅 기업 엔베러스(Enverus)에 따르면, 2030년까지 미국에 최대 80개의 신규 천연가스 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다. 이는 노르웨이 전력 시스템 규모와 같은 46GW(기가와트)의 발전 용량이 추가되는 것으로, 지난 5년간 증가한 것보다 약 20% 더 많은 수준이다.

이 같은 성장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두 번째 임기 동안 더 가속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은 화석연료를 미국 경제의 중심에 두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천연가스 발전 용량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뒤집히고 있다.

엔베러스의 분석가 코리안나 마(Corianna Mah)는 “천연가스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탄소 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가스 발전소에서 10억t(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4% 증가한 수치이며, 역대 최고치이다.

또 엔베러스가 추적 조사한 신규 가스발전소 중 어떤 곳도 탄소 포집 시스템을 도입한 곳은 없고, 도입 계획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2년부터 신규 발전소에 탄소 포집 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규정을 폐지하거나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

컨설팅사 우드 맥켄지와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 또한 미국의 발전 용량 증가 속도가 5년 전보다 각각 35%, 66%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내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붐은 미국이 AI 개발을 위해 중국과 경쟁하고 있고, 지난 수십 년간 아시아로 이전된 제조업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저렴한 전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방대한 셰일 가스 매장량 덕분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유럽의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미국 내 가스 가격을 비교적 낮게 유지할 수 있었던 주요인이다.

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대규모 보조금 덕분에 청정에너지 공급도 미국 전역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에너지 업계에서는 간헐적인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배터리 기술과 결합하더라도 대형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력 공급 업체 엔터지(Entergy)의 매트 불핏 발전 개발 부사장은 “전통적인 재생에너지로는 대규모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엔터지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메타 플랫폼스(Meta)의 100억달러(약 14조6000억원) 규모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32억달러(약 4조6900억원)를 투자해 3개의 신규 가스 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미국 최대 원자력 발전 기업인 콜스텔레이션에너지는 최근 세계 최대 발전소 운영사인 캘파인을 127억달러의 순부채 포함 총 266억달러(약 39조원)에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역시 AI 혁명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전력 산업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성사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인수는 앞으로 천연가스가 미국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데 예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다만 발전소에 탄소 포집 시스템이 신속히 도입되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엑손모빌과 쉐브론 등 대형 석유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노후한 가스 발전소를 계속 연장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싱크탱크 그리드 스트래티지(Grid Strategies)에 따르면, 미국의 전력 소비는 이미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으며, 2029년까지 16% 더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에너지부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향후 3년간 3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 감축하고, 2035년까지 탄소 배출이 없는 전력망으로 100% 전환한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목표를 위태롭게 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만으로 미국 가스 화력 발전의 10~30%에 달하는 추가 소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전소의 수명이 최소 25년에서 최대 40년인 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대응 목표 실현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이 우려를 키우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발전소 배출 규제 폐지 공약은 화석연료 발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듀크 에너지 등 일부 전력회사들은 트럼프 당선 후 석탄발전소 폐쇄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매년 이어지는 사상 최고 무더위와 각종 자연재해 등 기후 위기 악화를 막아야 할 미국의 기후 대응 후퇴를 의미하며,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 약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각국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늦출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데이터센터의 화석연료 의존도 심화가 청정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고,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산업이 2030년까지 약 25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러시아의 연간 배출량에 맞먹는 규모다.

비영리 환경단체 클린 에어 태스크 포스(Clean Air Task Force)의 아몬드 코헨(Armond Cohen) 대표는 “천연가스가 탈탄소화된 에너지 시스템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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