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화석연료' 부정적 논문 찾기 어려워..."기업 영향력 행사 때문"
연구진 "기업 대신 정부 지원 늘릴 필요"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화석연료 기업들이 대학의 환경 및 에너지 연구에 집중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고등 교육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5일(현지시간) 저널 'WIREs 기후 변화'에 발표된 '화석연료 산업이 고등교육에 미치는 영향(Fossil fuel industry influence in higher education)'에 따르면 화석연료 기업들은 대학의 기후 관련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녹색 에너지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
이번 연구는 지난 2003년부터 20년간 산업에서 투자한 논문 1만4000여편을 조사했다. 이들 논문 중 화석연료를 언급한 것은 7건에 불과했다. 관련된 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추가된 건수는 7건에 그쳤다.
반면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등 화석연료 기업들이 대학을 지원한 건수는 수백건에 달했다. 형태는 다양했다. 장학금을 비롯해 △이해관계자의 위원회 참석 △직책 부여 △커리큘럼 조언 등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석유회사들의 대학 내 영향력은 지대했다. 최악의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생산 및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확립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분석이다.
연구 공동 저자이자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의 기후정의 교수인 제니 스티븐스는 "과학은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를 우리가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해왔다"며 "그러나 대학 내에서는 단계적 폐지를 실천할 수 있는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분석 결과는 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부적절했는지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재의 화석연료 회사와 대학간의 관계로는 편향적인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실제적·인지적 이해 상충의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과학적 완전성을 지키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조교수인 제프리 수프란은 "연구진은 학자들과 대학 지도자들에게 화석연료 산업의 선전적 계획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일례로 영국 최대 정유기업인 BP는 지난 2012년에서 2017년 동안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탄소 배출 완화 이니셔티브에 210~260만달러(약 28~35억원)를 지원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산업 경제의 탈탄소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표면적으로는 정유회사가 탄소중립을 위한 연구에 지원한 것처럼 보였지만, 연구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았다. 연구에서 다룬 탈탄소화 시나리오에는 부정적인 배출 기술을 활용한 화석연료 산업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
더구나 2017년 BP에서는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니셔티브는 BP의 또 다른 공약인 '탄소 감축'에 중점을 뒀다. BP가 탄소 감축을 실천하고 있다는 일종의 증거로 활용된 셈이다.
미국 MIT에서 2011년 진행했던 연구도 비슷했다. 당시 연구에서는 가스를 '저탄소의 미래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불렀다. 이 연구 저자들 가운데 몇몇은 주요 화석연료 기업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스티븐스 교수는 "이 연구는 천연가스 등이 기후 솔루션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을 강화하는 듯해 보였다"고 강조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를 모두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이밖에도 사례는 다양했다. 엑손모빌은 1997년 알래스카에서 터진 대형 유조선 유출사고 이후 50억달러(약 6조7000억원) 규모의 징벌적 손해 배상금 재판에 항소한 적이 있다. 이때 하버드 로스쿨 교수에게 돈을 지불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글을 쓰도록 요구했다. 요청한 글은 '오늘날의 민사 사법 제도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금이 부적절한 이유'에 대해서였다.
미국 화석연료 로비단체인 미국석유협회(API) 측은 이번 연구에 대해 "미국의 석유 및 천연 가스 산업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며 저렴하고 안정적인 미국 에너지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솔루션을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는 전문가 및 조직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다만 BP와 엑손모빌, MIT 측은 이번 연구에 대해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연구진은 기업들의 대학 지원이 화석연료에 대한 긍정적 견해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환경 오염원 에너지 회사와 관계는 대학 내부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영리 단체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Data for Progress)의 보고서에 따르면 화석연료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미국 대학 27곳에 최소 7억달러(약 9320억원)를 기부했다. 다만 대다수의 대학 연구 센터가 자금을 지원해주는 곳들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최소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학 내에서도 기부자를 공개하자는 움직임은 있다. 최근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논문을 쓴 에밀리 이튼은 자신의 대학을 상대로 논문을 지원한 화석연료 기업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대학은 거부했고, 소송 끝에 기부자는 공개됐다.
연구진은 향후에도 화석연료 기업들과 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며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청했다. 더 많은 공적 자금이 대학에 투입된다면 기업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투명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라진 기자 jiny3410@sporbiz.co.kr
관련기사
- [1.5℃ HOW] 해리스-트럼프 에너지 정책 대립..."그린 뉴딜" vs "그린 사기"
- [1.5℃ HOW] 벤츠·BMW "포스코 등 공급망, 탈탄소 의지 확실"
- [1.5℃ HOW] '대선 쟁점'된 프래킹...해리스, 말 바꿔 "금지 않겠다"
- [1.5℃ HOW] 올여름 가장 더웠다...“지구온난화도 심화”
- [1.5℃ HOW] 韓수입 화석연료서 나오는 메탄, 포르투갈과 비슷
- [1.5℃ HOW] 美·中, 기후회담에서 '대립'..."온실가스 감축 계획 수립해야"
- [1.5℃ HOW] 남호주, 2027년 재생에너지 100% 전환 법제화...“국제사회 주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