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권효재 COR지식그룹 대표 ‘MASGA’ 성공 위한 ‘하이브리드 모델’ 제언
“울산·거제 집적 생태계처럼 미 조선 클러스터 구축 쉽지 않아”
“노조문화·방산 중심 산업 구조 고려한 하이브리드형 이식 필요”
디지털트윈 도입·선행화 공법 적용...숙련 인적자원, 정책 지원 필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1도크에서 LNG운반선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다./한화오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1도크에서 LNG운반선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다./한화오션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산업 클러스터와 고유한 역사적 경로 위에서 완성된 한국 조선산업 모델의 ‘전면적 이식’이 아닌 존스법 등 미국의 현실적 제약 조건을 고려한 ‘선택적·단계적 이식’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권효재 COR 지식그룹 대표는 최근 대한조선학회지에 실린 '한국 조선 시스템의 해외 이전 조건'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생산중심 설계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한 물리적 인프라 ▲공정 선행화 전략 ▲장기적 관점의 인적자본 축적 ▲다품종 대량생산이라는 다섯 가지 핵심 시스템으로 구분, 분석한 권 대표는 이러한 5가지 요소가 특정 지역의 산업 클러스터와 고유한 역사적 경로 위에서 비로소 완성됐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한국 조선은 블록공법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설계'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생산설계에 3D 모델링과 디지털 트윈을 적용한 결과 설계 오류로 인한 재작업을 최대 75%까지 감소시켰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 권 대표는 “생산설계는 건조 과정의 불확실성을 사전에 제거하고 모든 생산 활동을 표준화, 동기화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거대 시설 기반 물리적 인프라의 정점은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의 규모에서 나타난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1도크는 길이 530m, 폭 131m, 깊이 14.5m로 조성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으며 이는 1990년대 초반 폭 60m 내외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을 병렬로 건조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에는 17만4000㎥급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4척을 동시에 건조하는 방식으로 대형 도크의 활용 방식이 진화했다. 여기에 선박블록의 대형화 즉 ‘메가블록(Mega Block)’ 공법 구현을 통해 도크 회전율을 대폭 개선시킴으로써 수요가 몰리는 특정 선종을 대량 생산해 수익성 극대화에 기여했다.

세 번째 공정 선행화 전략은 유닛(Unit) 공법으로 대표된다. 복잡한 기계장치와 배관, 전선 등을 지상에서 하나의 모듈(Module)로 사전 제작 및 테스트한 후 한 번에 설치하는 유닛 공법 등 다양한 혁신 공법의 개발로 한국 조선소의 선행탑재율 및 블록 단계 의장 완성도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권 대표는 “위 세 요소가 시스템의 구조와 프로세스에 해당된다면 이를 실행하고 유기적으로 작동시키는 동력원은 고도로 숙련된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고 규정하며 “많은 후발 조선국이 한국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방했음에도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인적자본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수요 변동성이 심한 조선 시황에 대응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전략에서 출발한 ‘다품종 대량생산 시스템’도 한국 조선의 독자적인 경쟁 포지셔닝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VLCC, 컨테이너선, LNG운반선, 군함 등 이질적인 제품 포트폴리오를 하나의 생산 시스템 내에서 동시에 대량으로 건조함으로써 수주잔고의 안정적인 유지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권 대표는 “한국의 생산 패러다임이 단순한 모방이나 단기적 투자로 복제될 수 없으며 이는 동시에 총체적이고도 유기적인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 안벽에 접안돼 있는 미 해양청 발주 국가 안보 다목적 선박(NSMV)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연합뉴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 안벽에 접안돼 있는 미 해양청 발주 국가 안보 다목적 선박(NSMV)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연합뉴스

그는 “한국 조선사들이 과거 루마니아, 중국, 필리핀 등에서 해외 생산기지를 운영했지만 현지 노동 문화와의 충돌, 공급망 관리의 어려움, 핵심 기술 유출 문제 등 기술 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 요인들을 사전에 면밀히 분석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면서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고 많은 전문가들이 10년 이상 한국 조선소 시스템을 해외에 이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도로 숙련된 인적자본과 집적된 산업 생태계는 해외에서 찾기 힘든 한국 조선업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권 대표는 강조했다.

산업 생태계와 관련해 권 대표는 “울산, 거제, 부산을 잇는 동남권 해양산업 클러스터에는 세계적인 철강사, 엔진·기자재 업체, 전문 설계 엔지니어링 기업, 대학·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는 반면 미국은 존스법(Jones Act)에 따라 보호받는 내수 시장의 특성과 방산 위주의 산업 구조로 인해 상선 분야의 부품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가 매우 취약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노조 중심의 상이한 노사 관계 ▲상선 시장에서의 경쟁 경험 부족 ▲비용 정산(Cost-plus) 방식의 방산 계약 문화도 한국형 고효율 생산 모델이 뿌리내리기 어렵게 작용한다고 부연했다.

이에 권 대표는 한국 모델의 ‘전면적 이식’이 아닌 미국의 제도적, 문화적 환경에 맞춰 변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 대표는 “한국이 현지 조선소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미국 조선업 재건을 시도할 경우 미국의 현실적 제약 조건을 고려한 선택적, 단계적 이식 전략이 필요하다”며 “가령 생산설계 역량 강화를 위한 디지털 트윈 도입, 특정 공정에 대한 선행화 기법 적용 등은 비교적 단기간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듈식 접근”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인적자본 축적이나 산업 클러스터 구축과 같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미 연방·주 정부 차원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산업 정책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한화필리조선소의 사례가 양국 간의 심도 있는 산업 협력과 학습을 통해 ‘한국 모델 이식’을 넘어선 새로운 ‘하이브리드 생산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성공적인 선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 조선산업 전문가는 “한국 조선업 모델 및 시스템을 미국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숙련된 인력 양성과 낙후된 조선산업 생태계 재건, 노조 문화, 제도와 같은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기술과 정책이 혼합된 고도의 전략 마련이라는 과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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