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류정호 기자 | 2025 여수·NH농협컵 프로배구대회(KOVO컵) 남자부가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다. 그러나 개막 하루 만에 취소와 재개가 번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국배구연맹(KOVO)의 안일한 행정과 전문성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다.
KOVO는 13일 개막전 이후 국제배구연맹(FIVB)으로부터 개최 승인을 받지 못하자 14일 오전 0시 대회 전면 취소를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9시간 만인 이날 오전, FIVB가 조건부 승인을 내리면서 입장을 번복해 재개를 선언했다. 불과 17시간 사이 경기 연기, 취소, 재개가 이어졌고 사죄 입장문만 3차례 내놓는 촌극이 벌어졌다.
FIVB는 승인 조건으로 정규리그와 무관할 것,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 불허, 외국 클럽팀·외국인 선수 출전 금지, 세계선수권 등록 선수 출전 금지를 내걸었다. 따라서 태국 초청팀 나콘라차시마는 제외됐고, V리그 7개 구단만 국내 선수들로 대회를 치르게 됐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예비 명단 포함 선수 출전 불가’ 조항은 또 다른 혼란을 불렀다. 대표팀 소집 여부와 무관하게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까지 출전을 막으면서 일부 구단은 전력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더 큰 문제는 이미 개막전에 예비 명단 선수들이 출전했다는 점이다. KOVO는 해당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KOVO의 안일한 운영이다. FIVB는 국제 대회와 각국 리그 일정을 명확히 구분했고 ‘세계선수권 종료 후 최소 3주 휴식기 보장’ 규정을 사전에 공지했다. 그럼에도 KOVO는 컵대회를 이벤트성 대회로 규정해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사전 협의 부족과 규정 해석 오류가 겹치며 국제적 망신으로 이어졌다. 앞서 V리그 개막전이 세계선수권 일정 탓에 내년 3월로 연기됐던 사례도 있었지만, 동일한 문제가 반복됐다.
취소와 재개 번복은 선수단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혼란을 안겼다. 티켓 예매가 취소됐다가 재개 발표 후 기존 좌석 점유권이 유지되는 등 방침이 오락가락했다. KOVO는 전액 환불을 약속했지만, 남자부 잔여 경기는 모두 무료 관람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초청팀 나콘라차시마는 무관중 연습 경기만 소화하게 됐다. 대회 상금과 유료 입장권은 모두 사라졌고 권위와 명분은 크게 훼손됐다.
한국 배구는 김연경(37) 은퇴 이후 스타 부재와 국제 경쟁력 저하라는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리그 운영의 중심인 KOVO가 스스로 혼란을 키우며 불신을 자초했다. KOVO는 “조건 해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원들을 필리핀 현지로 급파했다”고 했지만 이미 떨어진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KOVO 행정의 민낯을 드러낸 자충수다.
류정호 기자 ryutility@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