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중국선박·중국중공 합병안 증권거래소 심사 통과
합병 완료 시 시총 50조·자산 75조 ‘공룡 탄생’
규모의 경제 앞세워 가격 경쟁력 더욱 강화될 듯
양사 R&D 효율성 제고...고부가 선박 기술 격차 축소 우려
CSSC 조선소 근로자들이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CSSC
CSSC 조선소 근로자들이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CSSC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세계 최대 조선 기업인 중국선박그룹유한공사(CSSC)의 핵심 조선 자회사 2곳의 합병이 임박했다.

업계 종사자와 조선산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2개 자회사의 합병 완료가 한 발짝 더 다가선 현실은 더 이상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CSSC 산하 중국 1·2위 조선사의 합병 논의는 6년 전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벌크선과 탱커(유조선), 컨테이너선 등 대부분의 ‘범용 상선’ 수주전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발 ‘조선 공룡’ 출범 소식에 ‘위기’라는 반응을 애써 감추지는 않고 있다.

CSSC 산하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중국선박)가 최근 공시를 통해 중국선박중공주식유한회사(중국중공)를 흡수합병하는 거래가 상하이증권거래소 인수합병심의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다고 증권일보 등 중국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합병은 중국선박이 신주를 발행해 기존 중국중공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신 합병안에 따르면 중국중공 주식 1주당 중국선박 주식 0.1339주를 교환할 수 있다. 앞으로 합병과 관련해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록 및 관련 법률·규정에 따른 추가 승인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지난 4일 종가 기준으로 중국선박, 중국중공의 시가총액은 각각 1467억위안(약 28조원), 1056억위안(약 20조원)이다. 양사 합병 시 시가총액 규모만 50조원에 육박한다. 합병 회사의 자산 규모는 4000억위안(약 75조원)으로 국내 최대인 HD현대중공업(20조원)을 압도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선박과 중국중공의 합병 논의가 시작된 건 2019년이다. 중국 조선사 간 과열된 수주 경쟁이 ‘조선 굴기’의 걸림돌이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대규모 상선에 특화한 중국선박과 방위산업 분야에 집중된 중국중공 간 기술적·조직 문화적 체질 차이가 해소되지 않고 다른 중국 조선사들의 수주도 이어지자 5년간 합병 논의는 답보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 5일 중국선박이 중국중공을 흡수합병하는 안이 상하이증권거래소 심사를 통과하면서 글로벌 조선 시장에 ‘공룡 기업’의 탄생이 확정됐다. 최근 글로벌 신조 시장의 피크아웃 논란이 일자 중국 당국이 합병을 미룰 수 없다고 계산한 것으로 분석된다.

1998년 설립된 중국선박은 군·민 조선 건조 및 수리, 해양공정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산하에는 장난조선, 와이가오차오조선, 중촨청시, 광촨국제 등 4개 조선 기업이 있다. 중국중공은 2008년 설립돼 해양방산과 해양개발장비 등의 사업 부문을 갖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대형 조선소는 다롄조선, 우창조선, 베이하이조선 등이다.

수주량 측면에서도 양사는 이미 세계 최대다. 중국선박은 지난해 154척, 1272만4600DWT(재화중량톤수)의 선박을 수주했다. 같은 기간 중국중공은 103척(1589만9500DWT)을 수주했다. 이는 전 세계 조선소가 체결한 선박 신조 주문량의 약 17%에 해당한다.

두 회사의 합병 소식에 국내 조선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선박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조선사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번 합병으로 양사의 연구·개발(R&D) 효율성이 제고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국내 조선사들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과거 가격 경쟁력 외에는 뚜렷한 장점이 없었던 중국 조선사들은 최근 국내 조선사들을 위협할 만한 건조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중국조선소를 두고 선가가 싸다는 장점으로 성장해 왔지만 고부가가치 선박을 포함한 건조 기술력은 아직 한국이 앞서 있다고 주장한 것은 현실과 다르다”며 “생각보다 많은 건조 관련 기술들이 이미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조선업계가 줄곧 주장해 온 ‘중국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선종 위주의 선별 수주’를 통해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오히려 국내 조선소들이 중국이 앞서고 있는 기술력을 추격해야 할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암모니아·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등 고부가 가스 운반선 부문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 추진선 등 신규 미래 먹거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또한 고부가 선박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 업계의 솔직한 시각이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부가 선박의 개발을 국가 차원에서 강력하게 후원하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라며 “국내 조선 3사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는 형국이며 정부 차원의 지원도 중국에 비하면 차마 말조차 꺼내기 힘들 정도다”라고 전했다.

이어 “중국과 일본보다 한참 낮은 단계지만 조선 3사가 지금이라도 고부가 선박 기술 개발에 공동 연구 및 실증 사업을 추진해야 향후 경쟁에서 그나마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며 “개별 조선 기업이 고군분투해 신화 창조를 하던 시절은 지났으며 조선 3사가 공동 연구·상용화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최근 분기별 실적 상승 등 눈앞의 성과에만 매몰돼 있는 조선사들이 멀리 내다봐야 함을 강조했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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