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경쟁력 하락·COTC 설비 확대도 원인으로 꼽혀
“공장 유휴 설비 축소, 설비 합리화 등 구조 재편 필요”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석유화학업계의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중국발 공급과잉에 미국의 수입 관세 압박으로 인해 부담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바닥을 탈출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사업(스페셜티) 위주의 사업 구조 재편이 시급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K-석유화학, 생존과 성장 전략’ 보고서에서 “국내 주요 업체 합산 영업이익률은 2021년 12.5%에서 2023년 -0.9%로 급락하며 적자 전환 후 지난해 -1.8%로 적자 폭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다만 포트폴리오 구성에 따라 업체별 실적에는 차이가 났다. 부타디엔을 원료로 해 합성고무 등을 생산하는 금호석유화학은 상대적으로 영업이익률이 견조했지만, 여천NCC, 롯데케미칼 등 업스트림 비중이 높은 NCC업체들은 실적이 부진했고, 가동률도 2021년 86%에서 2024년 77%로 낮아졌다.
◆ 수요처·가격 경쟁력 '부족'
주요 원인은 중국의 자급률 상승으로 인한 수요처 부족이다. 국내 석유화학 제품 수출량은 연간 3700만~3900만t 수준인데, 중국향 수출 비중은 축소되는 추세다.
2018년에는 1765만t을 수출했으나 2023년에는 1469만t으로 17% 감소했다. 지난해 1598만t으로 전년 대비 9% 반등했으나, 여전히 과거 수출 물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 의존도는 40%로 여전히 높다.
특히 그동안 중국이 수입에만 의존했던 에틸렌 자급률이 빠르게 상승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중국이 순수출국이 될 경우 한국은 최대 수출 시장을 잃게 된다”며 “2030년에는 중국향 수출 물량이 2024년 대비 38%에 불과한 600만t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고 밝혔다.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국내 제품은 NCC 공정을 사용해 유가 변동에 민감하고 제조원가도 상대적으로 높다”고 밝혔다.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로 가정할 때 NCC의 톤당 에틸렌 생산원가가 1200달러라면, 천연가스 기반의 ECC는 800달러로 NCC가 ECC 대비 약 1.5배 더 높다.
삼일PwC는 “NCC는 업황 부진기에는 판가 전이가 어려워 마진 압박이 크게 작용한다”며 “2022년 이후 다운사이클에서 NCC 기반 아시아 기업들은 수익성 저하를 겪고 있는 반면, ECC 기반 북미·중동 업체들은 수익성이 방어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정학적 요인도 가격 경쟁력 저하를 부추겼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 규모를 축소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 등이 해당 물량을 국제시세 대비 낮은 가격으로 흡수했다.
또한 러시아 원유 수출 가격인 우랄유와 국제시세인 브렌트유 가격 간 스프레드도 전쟁이 발발한 이후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현재 브렌트유는 배럴당 66.06달러인데 러시아의 우랄유는 배럴당 58.60달러로 7.46달러 차이 난다. 전쟁으로 발생한 무역장벽이 국내 NCC 업체들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 셈이다.
아울러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석유화학 통합공정인 COTC 설비 확대도 업황 부진의 원인으로 꼽혔다. NCC 공정은 정유 과정을 통해 나프타를 추출하고 이를 분해한 기초유분으로 최종제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COTC는 중간 과정 없이 원유에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해 생산비용 절감, 제품 전환비율 극대화와 탄소배출 저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엑손모빌이 2014년 이 공정을 처음 적용했고, 2019년부터는 중국이 주도 중이다. 즉 국내 업체들은 중국의 막대한 물량 공세와 저가 공세를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유안타증권은 유가 하락 전 구매한 높은 원료가와 떨어지는 환율, 재고 평가손실 때문에 석유화학업종이 2분기도 부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안타증권은 ▲유가 하락 전 구매한 높은 원료가 ▲환율 하락 ▲재고 평가 손실 등에 노출되면서 2분기도 회복 모멘텀은 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석화업체 합산 영업이익이 1분기 4713억원에서 2분기 3552억원으로 2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 설비 통폐합, 전략적 M&A 등 구조 재편 필요
이에 석유화학 업체들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사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바닥에서 탈출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장 유휴설비를 축소하고 설비 합리화 방안을 모색하는 등 구조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특정 석유화학단지에 중복으로 진출한 업체들의 공장을 유사 제품군 별로 전략적 설비 교환 또는 인수합병(M&A)하는 설비 통폐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중복 설비 간 통폐합이 이뤄지면 유휴 비중을 낮추고 중복투자를 방지할 수 있으며, 국내 업체 간 소모적 경쟁도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정부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기업들의 자발적인 구조 재편을 유도하기 위한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진행한 용역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중 후속 대책을 준비할 방침이다.
또한 성장하기 위해서 중국 제품이 대체하기 어려운 고부가가치 제품(스페셜티)을 공략하는 방향 선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아직 스페셜티 제품 비중이 낮아 범용제품 수출의 빈자리를 대신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단순 원료 판매에서 벗어나 고객 맞춤형 소재 제공과 기술 서비스를 결합한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발전하면, 장기적인 고객 락인(lock-in) 효과와 프리미엄 확보가 가능하다”며 “다만 신제품 시장 수요 예측 실패나 기술개발 지연 등의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주요 수요기업과의 공동 개발 파트너십을 통해 개발 단계부터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플라스틱 규제에 대응하는 친환경 제품 개발을 성장 전략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기존의 물리적 재활용 방식은 재생품의 품질 저하와 제한적인 적용 범위로 인해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며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순환 경제를 실현하고, 재활용의 범위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라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화학 산업에서 AI 기술 활용은 금융 또는 운송 등에 비해 덜 일반적이었다”며 “그러나 보다 엄격해진 품질 관리 프로토콜 및 ESG 추세에 따른 탄소 발자국 감축을 이행하기 위해 AI의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품질 관리 및 고장 예측·예방, 제품 생산공정과 화학물질 위험성·품질 검토, 탄소 발생량 절감 등이 강조되는 업종에 AI가 집중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화학적 물질 분석, 신제품 설계 및 개발 등을 위해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추세다.
보고서는 “석유화학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생산 공정의 연속 운전 안정성과 효율 최적화가 수익성의 핵심”이라며 “과거 인간의 경험과 규칙 기반 제어로 한계가 있던 부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