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개별 대응 한계
국가 차원 공조와 전략 절실
[한스경제=김동주 기자] “웬만한 기자들보다 더 확실하게 챙겨봤을걸요.”
한 언론사 기자의 너스레에 셀트리온 관계자는 말 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가 인하 발표를 꼭두새벽부터 지켜봤다는 그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피로감이 묻어났다.
올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셀트리온은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기업 중 하나다. 약가, 통상, 규제 발표가 이어지는 새벽 시간대면 회사 관계자들은 밤을 새우며 긴장 속에 발표문을 모니터링한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 시절보다 불확실한 통상 환경이 예고되면서 기업 입장에선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회사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이후 관세 부과 및 약가 인하 정책과 관련해 올해에만 10여 차례 주주 서한을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 이슈가 있었던 이달 중순은 유독 바쁜 시기였다. 추가 주주 서한이 게재됐고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온라인 간담회에 직접 등판해 어수선한 투자 심리를 다잡고자 했다. 국내 제약 산업의 위기론은 정보 부족에 따른 과도한 우려라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공장 실사를 받았다. 회사 측은 “계획된 정기 실사”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최근 FDA가 해외 제조시설에 대한 불시 점검 방침을 강화한 상황에서 업계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CDMO(위탁개발생산) 수주 확대를 추진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로서는 품질과 규제 대응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FDA는 최근 의료제품 및 식품을 제조하는 외국 시설에 대한 불시 점검 강화를 예고했다. 미국 내 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품질 검증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의 그림자가 K-제약바이오를 엄습하고 있다. 의약품에도 관세를 메기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엄포 이후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는 없지만,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업계에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긴박한 통상 리스크에 직면해 있음에도 업계를 조율하고 공동 대응 전략을 모색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기업마다 개별적으로 미국 정책 발표를 모니터링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현실은 전략적 대응에 있어 한계가 불가피하다.
종전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국무총리실 산하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혁신위)와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위원회) 등을 출범했으나 두 조직 모두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조기 대선 정국 등으로 수장 자리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놓인 만큼 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미국은 단일 시장 규모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시장이다. 미국의 규제 변화는 단순한 수출 전략 차원을 넘어 기업의 생존 전략과 직결된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종합 대응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산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며 외교적 채널로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공조와 전략이 절실하다.
김동주 기자 ed30109@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