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 제품은 미국에서 금지된 브롬화 난연제 사용...농도 EU 기준 5~1200배 수준
TV 외장재, 검은색 포장 용기에서 다량 검출...장난감에서도 검출돼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검은색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발암물질과 호르몬을 교란시킬 수 있는 화학물질에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장 용기뿐만 아니라 자주 사용하는 조리 도구에도 난연제가 사용돼 우려된다. 전문가는 난연제 노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제품 구매를 피하라고 권고했다.
환경보건단체 ‘독성물질 없는 미래(Toxix-Free Future)’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는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지난 5일(현지시간) 환경과학 분야 국제 저널인 ‘케모스피어(Chemosphere)’에 게재했다.
난연제는 타기 쉬운 성질인 플라스틱의 유기 물질에 첨가하거나 도포해 연소를 억제하거나 완화하는 화학물질이다. 보통 TV나 기타 전자제품 외장재에 사용되지만 유럽연합(EU)은 특정 종류의 브롬화 난연제에 대해 1kg당 10mg만 사용하도록 법적으로 정해놨고, 미국은 일부 난연제 사용을 금지했다.
연구팀은 203개의 가정용 검은색 플라스틱 제품을 대상으로 브롬화 난연제를 나타내는 지표인 ‘브롬’ 검사를 시행했다. 이 중 브롬 수치가 가장 높은 20개의 제품을 골라 난연제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약 17개 제품에서 난연제 농도는 1kg당 40~2만2800mg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14개 제품은 미국에서 금지된 특정 브롬화 난연제가 사용됐고, 그 농도는 EU가 설정한 상한선보다 5~1200배 높은 수준이었다.
의상용 구슬 장식의 난연제 농도가 가장 높았으며, 검은색 포장 용기에서도 금지된 난연제가 검출됐다. 일부 제품에서는 한 번에 최대 9가지의 난연제가 검출되기도 했다.
이밖에 TV 외장재, 노트북, 케이블 등에서 발견됐으며, 난연제가 필요하지 않은 가전제품에 사용되기도 했다.
연구팀은 테스트 된 제품에서의 화학물질 농도를 특정 질병과 연결짓지 못했지만, 화학물질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난연제가 인간과 환경 모두에 유해하다고 밝혔다. EPA는 “난연제의 내구성 때문에 환경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난연제는 내분비계 교란, 갑상선, 생식계 합병증, 신경독성 및 암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 아동의 경우 많이 노출될수록 주의력 저하, 운동 능력 저하, 인지 발달 지연을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 공동 저자이자 독성물질 없는 미래의 과학 및 정책 매니저인 메건 리우는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화학물질과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며 “특히 난연제는 음식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공기 중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10년 넘게 난연제를 연구해 온 라마스와미 나가라잔 매사추세츠 로웰 대학교 플라스틱 공학과 교수는 “이번 결과는 오래전 사용된 화학물질이 여전히 새로운 제품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나가라잔 교수는 “난연제는 독성이 강하다”며 “소량이라도 상당이 해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년 동안 업계 관계자들과 기업들은 가구 등 제품에서 난연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2017년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전자제품에서 발견되는 일부 난연제에 대한 규칙 제정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조업체에는 제품에서 난연제를 제거할 것을 촉구했다.
또 소매업체에는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에 난연제가 없다는 것을 보장하도록 했지만, 최종 규칙 설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와 함께 미국 워싱턴, 뉴욕,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일부 주에서는 전자제품에 난연제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정했으며, 유럽연합은 2006년부터 이 물질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리우는 “가장 해로운 화학물질을 금지하는 규제가 부족하다”며 “위험한 화학물질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가 없으면 제조업체들을 이러한 유독성 첨가제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그들이 만드는 플라스틱 제품에도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유독성 물질이 제품에 존재하는 이유는 잘못 관리된 전자 폐기물 재활용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 대부분은 매립지로 보내지고, 일부만 재활용된다. 재활용된 플라스틱 중에서도 난연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리우는 “이것은 더러운 플라스틱 재활용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리우는 이어 “유해한 제품 구매를 피하고 집을 깨끗이 유지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이 행동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우는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을 소개했다. 그는 “플라스틱 조리 도구를 나무나 스테인리스 재질로 교체하고, 난연제 노출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강력한 정책을 가진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고 정기적인 청소와 환기를 통해 공기 중에 축적된 난연제를 없애며, 물걸레 청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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