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보스턴컨설팅그룹, 전환금융 시장 확대 전망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저탄소로 바꾸는 금융의 역할 중요
지구의 마지막 경고선인 1.5℃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 높아졌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기온보다 1.5℃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자'는 뜻을 모은지 8년 만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한 것이 무색할 만큼 온도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이에 창간 9주년을 맞는 한스경제는 그간 천착해온 '1.5°C HOW' 캠페인에 맞춰 인류 생존 최후의 방어선인 1.5°C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부문별로 국내외 동향과 쟁점,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엮어 연중기획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기후위기 전선에서 뒷전에 머무는 듯 했던 금융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친환경 산업과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유도하며 이제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금융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녹색기술과 친환경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한편 여신과 투자 과정에서 ESG 요소를 고려해 기업들의 지속가능 경영을 촉진시킨다. 또한 다양한 녹색금융 상품을 개발해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권이 전방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기후금융의 △고탄소 산업의 저탄소 전환 동기 약화 △실물경제 악영향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이 주목받고 있다.
전환금융이란 제조업과 같이 탄소중립 달성이 어려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에 탄소저감 설비투자를 비롯해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기후금융 기법을 말한다.
녹색금융이 주로 환경친화적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금융을 공급한다면, 전환 금융은 탄소집약적 산업이나 기업을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환금융을 '신빙성 있는 이행 계획 하에 파리협약과 일관된 넷제로 전환을 실행하기 위해 기업이 조달하거나 집행하는 금융'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GFANZ)’은 전환금융 확대를 위한 권장 사항과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은행장 및 정책금융기관장 간담회를 개최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지원 방안으로는 먼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금융기관(△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의 역할을 강화해 2030년까지 총 420조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기로 하기로 했다.
연평균 자금 공급량은 지난 5년 평균인 연 36조원 대비 연 60조원으로 67%가 확대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이 약 8597만t 감축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30년까지 국가 감축목표의 29.5%에 달하는 수준이다.
두 번째로 은행권 출자를 통해 총 9조원 규모의 '미래에너지펀드'를 신규 조성해 재생에너지 설비 증설 관련 금융수요 160조원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조달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조성된 펀드는 국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 투자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미래 먹거리 개발을 위해 기후기술 분야에 약 9조원 규모로 투자한다. 기후기술은 향후 연평균 24.5% 성장이 예상되는 유망한 시장이지만, 초기 경제성이 부족해 개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IBK기업은행과 5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총 1조 500억원(IBK기업은행 2625억원·5개 시중은행 각 1575억원)을 출자해 민간자금 1조 9500억원을 매칭해 총 3조원 규모의 '기후기술펀드'를 조성하기로 하기로 했다.
정부는 기후금융 지원을 위한 제도 정비에도 나선다. 은행이 여신에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적용할 수 있도록 연내 금융권과 공동으로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만들고, 국내 금융권의 기후 리스크 관리 강화도 지원한다.
금융권이 정부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으로는 보다 효과적인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전환금융 체계 마련 필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금융을 일반적으로 녹색금융으로 지칭하고 있으며, 녹색금융 활성화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녹색 경제활동의 분류 체계인 그린 택사노미도 마련돼 있다.
다만 탄소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탄소 부문은 녹색금융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이 부문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전까지 금융사의 기후금융은 금융배출량(자산포트폴리오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고탄소 산업 익스포져를 줄이고 친환경 기업·프로젝트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고탄소 산업은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돼 탄소중립을 위한 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생산부진이나 고용악화 등, 실물경제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국내의 경우는 제조업을 비롯해 탄소 다(多) 배출 산업이 부가가치 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 수준으로 높은 반면, 전환금융은 고탄소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위한 ‘과도기적’ 활동에도 지원할 수 있어 기존 대비 자금지원 대상기업과 활용범위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탄소중립의 실현은 국가나 업종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경로가 상정돼 있어 결코 단기간에 이를 이룰 수 없다. 연료 전환·에너지 절약 기술·고효율 발전 설비 등을 활용한 전환단계를 거쳐 장기적·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전환금융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기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전망도 밝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McKinsey)'는 2024년 5대 기업투자금융(CIB) 비즈니스 트렌드 중 하나로 전환금융을 제시했다. 맥킨지는 7개 고탄소섹터(발전·모빌리티·건설·농업·공업·임업·수소산업)에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55조달러 규모의 전환금융 기회를 전망했다.
이에 국내에서도 전환금융 시장 활성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은행과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녹색금융 국제컨퍼런스’에서 국내 녹색금융 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전환금융이 논의됐다.
NH농협금융은 지난 3일 '기후기술 금융연구 포럼'을 개최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환금융'의 정의와 전환금융에 선제적으로 대응 중인 일본 MUFG Bank 적용 사례 등을 소개하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저탄소 경제사회를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금융특별법 입법토론회'를 개최하고 "국내에서 철강·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조선 등,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을 저탄소로 바꾸는 금융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며 전환금융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녹색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녹색금융과 함께 갈색 경제활동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전환금융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한 재원조성과 정책지원, 민간투자 활성화, 관련 정보 공시제도 강화 및 탄소시장 거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동림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사는 전환금융이 '기업금융 강화'를 위한 새로운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관련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국내 주요 고탄소 업종에서 2030년까지 약 1000조원의 전환금융 수요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55% 이상이 은행대출 형태로 공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노 기자 sungro5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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