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항소심 재판부 설명자료, 오히려 역풍
법조계 내에서도 "중대한 변경…단순경정 아니다" 지적
선대회장 기여도 높이 사는 전략에 우려도
지난 17일 오전 SK서린사옥에서 열린 항소심 판결문 오류 발표장에 모습을 드러낸 최태원 SK 회장. / 연합
지난 17일 오전 SK서린사옥에서 열린 항소심 판결문 오류 발표장에 모습을 드러낸 최태원 SK 회장. / 연합

[한스경제=조나리 기자] ‘세기의 이혼’ 소송에서 ‘치명적 오류’에 반격을 가하며 항소심 재판부와 설전을 벌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이 일단 재산분할 소송전의 주도권을 잡은 모양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사안이 단순한 수치 오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기간 그룹의 성장이 크지 않았던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 이후 정부에서도 최종현 선대회장 측 기여를 높이 사는 전략에 대해선 딜레마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7일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진행한 재판부는 최 회장 측의 판결문 오류 지적에 대해 재산분할의 변동 없는 경정 조치로 응수했다. 매우 즉각적인 조치인데다 최대 쟁점인 재산분할액은 유지해 더욱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SK 측도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 경정결정은 스스로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이라며 “계산 오류가 재산분할 범위와 비율 판단의 근거가 된 만큼 단순 경정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판결의 실질적 내용을 새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재판부의 단순 경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검토 중”이라며 “대법원도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계산착오가 있었다면 경정사항에 속하나, 착오된 계산액을 기초로 과실상계를 했다면 파기사유가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판결문 수정을 두고 논란이 점화되자 다음날인 18일 재판부는 다시 한 번 이례적으로 설명자료까지 배포했다.

재판부는 “2009년 11월 (SK C&C 주식 가치) 3만5650원은 중간 단계의 가치로 최종적인 비교 대상이나 기준 가격이 아니다”라며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는 재산 분할 기준 시점인 항소심 변론종결(2024년 4월 16일) 당시 SK㈜ 주식 가치인 16만원과 비교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때문에 1998년 5월 13일(최 선대회장 별세 무렵) SK 주식가치가 수정 전 100원에서 1000원으로 변경하더라도 최 회장의 기여도 평가 기준 시기는 2009년 11월 11일(3만5650원)이 아닌 2024년 4월 16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으로 최 회장의 기여도는 애초 오류 수정 후 35.6배에서 160배로 치솟았다.

이어 재판부는 “노태우가 최종현 및 최태원의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것이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라고 강조하며, 최 회장 부자의 기여도 문제는 부수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재판부의 설명에 대해 SK 측은 즉각 반발했다. SK는 “재판부가 판결문 오류를 인정했음에도 기여도와 관련해서는 최 회장의 기여 기간을 2024년 4월까지 26년간 늘렸다”면서 “항소심 재판부가 이러한 논리를 견지하기 위해 판결문을 2024년까지 비교기간을 늘리도록 추가 경정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관계가 2019년에 파탄났다고 했음에도 2024년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재차 지적했다.

재판부가 추가적으로 조치를 취할 때마다 SK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되면서 일각에선 재판부의 판단 미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후로 재판부 역시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현재까지는 최 회장 측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사안이 단순 경정 대상이 아니라는 전직 판사의 주장도 나오며 최 회장 측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가정법원 판사이자 법무부 송무심의관 출신인 정재민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판결 경정은 판결의 실질적 내용이 변하지 않는 범위에서 누가 봐도 명백한 사소한 누락, 오기, 계산 착오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대한텔레콤 가치가 8원에서 100원 아닌 1000원이란 것은 선대회장의 기여도가 12.5배에서 125배로 10배 뛴 것이다. 이는 노 관장의 기여도도 낮아지는 만큼 중대한 판결 내용 변경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 회장과 SK 측은 지난 17일 판결문 오류 발표장에서 “기업이 비자금으로 성장했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회사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그룹 차원의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건에 회사가 전면에 나서서 대응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이혼 자체나 개인사에 대한 내용은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재산분할액과 관련해 주주들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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