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십시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전 의원이 개인 SNS에 이재명 대표 퇴진을 촉구했다. 이 대표 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다. 글을 쓴 의도는 이재명 리스크가 더불어민주당 리스크로 확대돼 당이 위기에 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자칫하면 당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지극히 정상적 발언이다. 쉽지 않은 목소리를 냈지만 돌아온 당내 반응은 냉랭했다. 배신자, 수박,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이 뒤를 이었다. 건강한, 상식적인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민주당의 고질병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도진 셈이다.

민주당은 20대 대선에서 10년 주기로 반복된 정권 연장에 실패했다.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가며 10년씩 집권했던 흐름이 깨졌다. 더구나 상대는 여의도 정치 경험이 없는 초짜였다. 검찰총장 출신 국민의힘 윤석열은 정치 참여 1년도 안 돼 승리했다. 그것도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전폭적 지지를 받는 이재명을 상대로 이겼다. 이재명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2위 이낙연을 줄곧 두 배 이상 앞섰다. 하지만 본선에서 역대 최약체로 평가받은 윤석열에게 패했다. 0.7%차이 근소한 패배는 이재명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조국 사태 때부터 누적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과 오만 때문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듯 문재인 정부 몰락은 조국에서부터 비롯됐다. 문 전 대통령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 당내에서조차 부정적 여론은 만만치 않았지만 개인적 친분을 앞세워 강행했다. 그 결과 조국은 3개월 만에 장관직을 그만뒀고, 국민 여론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렸다. 진보와 보수진영은 1년여 동안 극단적으로 대치하며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다. 정상적인 국가운영은 아니었다. 지지층에만 기댄 정권은 그때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고집불통’에 중도층은 싸늘한 결별을 고했다. 조국 사태는 윤석열을 야권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모든 문제는 민주당 내부에서 찾는 게 합리적이다. 언론과 민주당에 우호적인 인사들까지 우려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민주당만 침묵했다. 민주당은 비판 여론에 귀 닫고 눈 감았다. 당내 쓴 소리는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가 전부였다. 그나마 당 지도부와 동료 의원들은 이들을 배신자 프레임으로 린치를 가했다. 출당조치도 모자라 심지어 금태섭은 징계까지 부관참시했다. 침묵의 나선에 빠진 거대 여당은 조국 감싸기에 급급했다. 조국에 대한 낯 뜨거운 헌사는 하루가 멀다했다. 이성은 사라지고 광기가 지배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민주당은 에코쳄버 안에서 확증편향을 심화했고, 결과는 대선 패배로 귀결됐다.

최근 김동연 경기지사는 도정에 ‘레드 팀(red team)’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레드 팀은 조직 내 취약점을 발견해 견제한다. 편향동화나 확증편향에 빠지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직 운영기법이다. 나아가 다수 의견에 굴복해 소수의견이 묵살되는 ‘동조압력(同調圧力)’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위계질서가 강한 공조직에서는 상급자 눈치를 보거나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기도 레드 팀은 관행과 타성에서 벗어나 도정에 견제와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레드 팀이 정작 필요한 조직은 정당이다. 공천권을 쥔 지도부의 그릇된 판단과 결정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아래서 민주당은 레드 팀은커녕 최소한 비판과 토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내로남불’과 ‘오만’, ‘줄 서기’, ‘충성맹세’가 득세했다. 특히 강성 의원들이 당을 장악하면서 건강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는 배제됐다. 앞서 언급한 조국 사태는 물론이고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결정, 비례위성 정당 창당까지 민주당은 여론과 배치되는 오판을 거듭했다. 하나같이 비판 여론은 묵살하고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여론만 편향적으로 취합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실패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채 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연구원 부원장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저지는 대표적 패착이다. 법원 영장까지 발부한 법 집행을 위력으로 막은 집단행동은 용인하기 어렵다. 국민들 눈에 민주당의 물리력 행사가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자명하다. 더구나 이 대표 측근에 불과한 김 부위원장 문제까지 당이 비호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김해영 전 의원에 대해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섣부른 예단에 따른 입장이 함부로 표현돼 당내 분란을 일으킨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자중해야 한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검찰 독재와 신(新)공안정국에 맞서 일치단결해야 할 때”, 김남국 의원은 “내부 권력 다툼을 위한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는 ‘기회주의적 정치’”라고 비난했다. 다시 침묵의 나선이 가동되는 민주당 현주소다. 쓴 소리를 내부 총질로 바라보는 한 민주당은 패배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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