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올해 추석도 어김없이 애잔한 고향의 뒷모습을 돌아보는 명절이 되고 말았다. 이문열은 1980년 발표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쇠락한 고향과 상실감을 이야기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40여년 전 작가는 정서적 상실을 애달프게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는 실재적인 지방소멸과 마주하고 있다.

고교야구의 명문, 군산상고가 있는 군산에서 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군산은 전국적으로도 손꼽는 산업도시였다. 항구도시에다 백화양조, 경성고무, 한국합판, 세풍제지, 영진주철 등 내로라한 기업에 힘입어 도시는 활기찼다. 구도심 일대 히로쓰 가옥과 군산세관을 비롯한 일본 건축물과 소문난 맛집은 옛 영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과거는 희미한 기억이 됐다. 군산 또한 지방도시마다 비슷하게 겪는 인구유출과 저출산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연이은 현대중공업(2017년)과 GM대우(2018년) 가동 중단은 결정타가 됐다.

여러 통계지표는 쇠락한 군산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현대중공업과 GM대우는 군산지역 전체 수출에서 64.4%(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 2012년)를 차지하는 주요 축이었다. 30만 명을 넘봤던 인구는 가동 중단 이후 26만3700명(2022년 7월)으로 주저앉았다. 또 제조업 취업자는 2015년 3만100명에서 2020년 2만100명으로, 5년 사이 1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활동 주역인 20~39세 인구도 2015년 7만3204명에서 2021년 6만3329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은 3만9874명에서 5만1459명으로 늘었다. 도시는 활력을 잃은 채 늙어가는 중이다. 2020년 238개에 달했던 어린이집은 158개로 감소했고, 58개 초등학교 가운데 전교생 150명 미만은 절반(32개교)을 넘는다. 급기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113개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군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구도심(영동~역전 시장)에서 추억은 한 가지씩 갖고 있다. 구도심은 모든 청춘남녀가 모이는 핫 플레이스였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성당 빵집과 영동 의류상가는 걷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찾은 영동과 구도심 일대는 충격적일만큼 썰렁했다. 임대와 매매 전단지로 도배된 영동 거리는 폐허를 연상케 했다. 번성했던 군산의 몰락은 지방도시가 처한 암울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을 113곳으로 발표했다. 2015년 80곳에서 2020년 102곳, 올해 113곳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앞으로 30년 후면 지방도시 절반(49.6%)은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앞서 지방소멸을 겪은 일본은 2014년 마스다 보고서를 토대로 지역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방소멸은 더 이상 돌아갈 고향이 없는 상실감을 의미한다. 또 기형적 수도권 집중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대도시 인구 집중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방소멸은 저출산과 인구 유출이 주된 원인이다. 올해 합계 출산율은 0.81명으로 4년 연속 1명 미만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다. 특히 지방도시 출산율은 바닥이고 산부인과 폐업도 심각하다. 열악한 일자리와 주거, 문화시설은 인구 유출을 부채질한다. 서울과 경기, 인천은 전체 국토에서 11.8%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인구 50.4%, 지역내총생산(GRDP) 52.6%, 취업자 50.5%가 집중돼 있다. 또 1000대 기업 본사 87%도 이곳에 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엑소더스(이탈)’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지역이 주체가 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앙정부가 틀을 제시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획일적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스스로 특성에 맞는 발전 전략을 수립하면 지원하는 방식이다. 조만간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도 출범한다. 또 올해부터는 인구감소지역과 관심지역을 대상으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매년 1조원씩 10년 간 10조원 규모다. 광역단체를 거치지 않고 중앙정부가 직접 기초단체(75%)와 광역단체(25%)를 지원한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지역 89곳, 관심지역 18곳을 선정했다. 인구감소지역에는 최소 112억원에서 최고 210억원, 관심지역은 최소 28억원에서 53억원을 지원한다.

새 정부가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건 바람직하다. 다만 이전 정부에서도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실패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이 주도하는 방식을 고민할 때다. '소멸위기 지방도시는 어떻게 명품도시가 되었나'와 '앙제에서 중소도시 미래를 보다'는 지역이 주도한 다양한 성공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특성을 살려 퇴락한 지방도시를 개성과 매력 넘치는 도시로 바꿨다. 프랑스와 일본은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해답은 지역에 있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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