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는 지극히 암울하다. 반중 정서는 역대 최고이며, MZ세대 10명중 8명은 중국에 가지 않겠다며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악화됐을까. 수교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모든 여론조사는 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힘을 앞세운 패권외교와 주변국을 속국 취급하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반감이다. 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며 ‘안미경중(安美經中)’을 견지해왔던 우리 정부 입장에서 대중국 정책기조 변화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수세적 외교에서 탈피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퓨리서치가 2~6월까지 1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 80%는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일본이 87%로 가장 높았고, 오스트레일리아(86%)와 스웨덴(83%), 미국(82%) 순이다. 반중 정서는 세계적 흐름이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 면접 조사에서도 70.3%는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긍정적 인상은 11.8%에 불과했다. 또 중국을 ‘기회’가 아닌 ‘위협’으로 보는 시각도 크게 늘었다. ‘기회’는 19.3%에 불과한 반면 4배 가까운 75.4%는 ‘위협’으로 인식했다. 수교 초기 앞 다퉈 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MZ세대가 느끼는 반중 정서는 훨씬 강했다.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중국을 방문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20∼24세 78%는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MZ세대 사이에 반중 정서가 극단에 달했다는 방증이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고압적 외교 및 태도’(52.9%)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탈권위주의와 실리를 중요시하는 한국 MZ세대에게 공세적인 중국 외교정책은 오만한 행동이다. 중국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변국을 속국 취급함으로써 반중 정서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여론조사에 확인됐듯 지난 30년 동안 한·중은 ‘경제적 기회’ 이상 가치를 마련하지 못한 채 반감만 키워왔다. 근본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반중 정서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한국 MZ세대들 사이에 만연한 반중 정서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회담에서 “한국이 응당 해야 할 5가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는데, 이 또한 MZ세대들에게는 오만함으로 비춰졌다.

반중 정서는 앞서 언급했듯 중국 정부의 일방적이며 강압적인 외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사드 배치와 관련 보복으로 대응했다. ‘한한령(限韓令)’을 앞세운 경제 보복은 물론 문화예술인들 활동까지 제한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상당수는 큰 손실과 함께 사업을 접어야 했다. 또 한국 드라마와 영화 상영 불허, 대중 연예인 활동도 제재했다. 역사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 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성)은 “동북 3성 일대 과거 민족사가 모두 중국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또 한복과 김치 종주국이라는 주장도 반복했다. 시진핑 주석 체재 아래서 주변국을 속국 취급하고 강압적으로 대하는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는 불화와 반감으로 이어졌다. 대국답지 못한 좀스런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반중 정서가 심화되면서 중국을 대하는 시선도 달라졌다. 동아시아연구원 2015년 조사에선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거란 응답은 73.4%로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7년 만에 48.2%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응답은 2배(26.5%→51.8%)가까이 늘었다. 불안감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불거질 경우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지 답변에도 드러났다. ‘미국지지(41.2%)’와 ‘중립유지(56.6%)’에 비해 ‘중국지지’는 2.1% 불과했다. 패권 외교에 대한 반감과 견제 심리가 커진 탓이다.

이쯤 되면 반중 정서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 게 현명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돌리고, 지금과 같은 정책 기조를 고집할 경우 관계 회복은 요원하다. 중국 정부는 패권외교를 지속한다면 주변 국가와 마찰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22일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며 핵심 관심사와 중대한 이익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이해와 존중, 포용과 배려는 누구에게 필요할까. 이해와 존중, 포용과 배려는 상대적 강자에게 보다 필요한 덕목이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이러한 덕목을 한국과 주변국에게만 강요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칩4, 사드 추가 배치 및 운용, 대만 정책, 북핵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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