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2일 출범하는 행정안전부 경찰국은 윤석열 정부와 우리사회에 간단치 않은 과제를 던졌다. 주지하다시피 윤석열 정부 지지율은 형편없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6~28일 조사해 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심각하다.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62%에 달했다. 한 주 전에 비해 긍정은 4% 하락했는데 부정은 2% 상승했다. 설마 했는데 30% 벽을 뚫고 28%까지 주저앉았다. 윤석열 표 정책을 추진하기도 전이라 여권은 당혹스럽다. 낮은 지지율은 국정과제 추진에 걸림돌이다. 여론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권에서 추진하는 정책에 힘이 실릴 리 없기 때문이다.

출범 100일도 안된 정권에 대한 박한 평가는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찰국 신설은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다. 경찰국 신설 자체는 그다지 문제될게 없다. 문제는 권위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 있다. 경찰국 신설은 여러 부분에서 공감된다. ‘검수완박’ 법안에 따라 경찰청 권한은 크게 확대됐기에 정상적인 정부라면 견제와 통제는 합당한 의사결정이다. 역대 정부는 민정수석실에서 경찰청을 통제해 왔다. 현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했기에 어떤 식으로든 경찰청을 통제해야 할 필요에 이르렀다. 경찰국 신설은 이런 당위성에서 추진된 것으로 이해된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통제받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민주주의는 여론을 근간으로 작동한다. 여론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형성된다. 폭넓은 여론을 밑바탕에 둘 때 정책은 당위성을 확보하고 국민들도 호응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동의를 얻지 못하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후보지 결정 과정은 좋은 사례다. 당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후보지는 국가적 과제였다. 그럼에도 나서는 지자체자 없자 정부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유치 선언에 나선 곳은 지역발전에 목말랐던 전북 부안군이었다. 부안군수는 정부 지원금이 지역에 도움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주민 공청회와 군의회 동의절차를 건너뛰었다. 결과적으로 유치는 실패했고 상처와 후유증만 남겼다.

좋은 정책이니 주민들도 동의할 것이라는 자의적 판단을 바탕으로 밀어붙인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해 당사자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면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나아가 당장은 갈등이 봉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불씨는 잠복해 있다. 권위주의 정책 결정은 당장은 빠르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여러 이해 당사자 의견을 모으는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라고 착각한다. 부안 방폐장 유치와 검수완박 법안, 임대차 3법은 그렇지 않다는 걸 시사한다. 여론을 외면한 권위적 정책 결정, 일방통행 입법이 초래한 부작용은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 말기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 법안은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국민들은 6.1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재차 심판했다.

전임 정권이 몰락한 결정적 이유는 ‘내로남불’과 ‘독선’이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동일한 실패 경로를 따라가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왜 정권만 잡으면 합리적 의사결정을 못할까. 브라이언 클라스가 쓴 '권력의 심리학'은 작은 단서를 제공한다. 권력을 쥐면 자제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취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떨어져 일방통행에 빠진다며 권력의 속성을 갈파했다. 권력이 커질수록 공감 필요성을 덜 느끼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인데, 집권초기 조자룡 헌 칼 휘두르는 권력자들에게서 이 같은 속성을 발견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 신설 방침을 공식화한 지 한 달 만에 국무회의에서 관련 시행령을 의결했다. 속전속결이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물론 국민들과 충분한 소통을 생략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서장들이 전국 서장회의를 열고 집단 반발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경찰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들에게 당위성을 알리는 공청회를 여는 대신 ‘우리가 하는 일은 옳다’는 과잉 신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강행한 결과는 여론 지지율 28%에 집약돼 있다. 경찰청에 대한 합리적 통제는 당연하다. 경찰들이 집단행동을 하면서까지 제기했던 수사권 지휘 우려는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경찰국은 수사를 지휘하거나 통제하는 기구가 아니다. 총괄지원, 인사지원, 자치경찰 업무를 담당한다. 또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우리 행안부에 해당하는 내무부가 경찰청 인사와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결국 당위성과 선진 사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경찰국 논란은 토론과 합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와 타협, 설득은 기본이다. 윤석열 정부가 민주주의 기본을 지켜간다면 여론 지지율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 관건은 그럴 의지와 철학이 있느냐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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