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용인·전남 등 첨단거점 확산, 지역경제 활력 기대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정부의 대미 관세 인하 성과와 이재명 대통령의 국내 고용·투자 확대 요청에 호응해 주요 대기업들이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산업계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민간 합동회의’를 열고 기업들의 국내 투자 확대 계획을 논의했다.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등 7명이 참석했다.
이날 삼성은 5년간 450조원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우선 최첨단 반도체 공장인 평택사업장 5라인 공사를 추진한다. 삼성전자는 5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이 공장을 2028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는 2022년 제시한 5개년 투자계획(360조 원)보다 25%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반도체·디스플레이·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등 첨단 산업 중심으로 투자가 집중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직전 5년간 국내 투자액(89조1000억 원)보다 36조1000억 원 늘어난 규모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128조원, LG그룹은 5년간 100조원을 각각 국내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 삼성과 SK 두 그룹이 주도하는 초대형 투자가 한국 산업 구조 전반을 바꾸는 동시에 수도권을 넘어 전국 주요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의 핵심 투자지는 경기도 평택이다. 평택캠퍼스 2단지 내 P5라인(5공장)은 이미 골조 공사에 돌입했으며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글로벌 AI 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P5라인은 AI 서버용 반도체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복합라인으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택은 이 라인 가동을 계기로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건설·장비·물류 등 협력업체 약 200여개가 입주를 추진 중이며 향후 5년간 직·간접 고용 인원만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인구 유입 증가에 따른 교통, 주거, 교육 인프라 확충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국내 시설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며 “AI 데이터센터 등은 수도권 외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해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삼성SDS는 전남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국가 AI 컴퓨팅센터 SPC(특수목적회사) 컨소시엄의 주사업자로 참여하며, 향후 전남을 AI 인프라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울산에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공장 후보지를 검토 중이다. 이는 전기차용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울산 조선·자동차 중심 산업구조에 ‘친환경 첨단소재’ 산업을 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아산 사업장에서 8.6세대 IT용 OLED 양산을, 삼성전기는 부산을 중심으로 고부가 반도체 패키지 기판 거점화를 추진하고 있다.
SK그룹 또한 2028년까지 128조 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핵심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SK하이닉스가 조성 중인 팹 4기 완공 시 총 투자 규모는 6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 증가와 공정 첨단화에 대응하기 위한 설계 변경으로 당초 계획보다 투자비가 크게 늘었다.
SK그룹 내부 추산에 따르면 용인 클러스터의 직접 고용인원은 수만 명, 협력사 포함 총 18만 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공장 완공 후 매년 1만 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반도체 팹이 한 라인씩 가동될 때마다 2000명 이상이 새로 일한다”며 “클러스터 조성이 앞당겨지면 연간 2만 명 수준의 고용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은 이미 SK 투자를 중심으로 반도체 소재·장비 중소기업들이 속속 입주하며 산업 생태계가 확장되는 중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협력업체 입주 문의가 급증하면서 산업단지 분양률이 급상승 중”이라며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과 SK의 투자는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인 산업 균형 발전의 촉매제로 평가된다. 전남의 AI 데이터센터는 지역 전력 및 통신 인프라 확충을 유도해 관련 중소기업의 성장 기반을 넓히고 울산의 배터리 산업은 기존 조선·자동차 산업에 친환경 첨단 제조업 생태계를 접목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부산의 반도체 기판, 아산의 OLED, 평택과 용인의 반도체가 연계되며 ‘한국형 첨단산업 벨트’의 윤곽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로 약 30만명의 신규 일자리와 200조원 규모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 투자는 단순한 생산시설 확충을 넘어 지역 산업 구조 자체를 첨단 제조 기반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역 자립형 성장을 가능케 하는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정부 역시 이번 민간투자 확대를 산업정책과 긴밀히 연계해 추진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초격차 유지와 AI 국가 전략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관련 인프라와 인재양성 예산을 확대 편성할 계획이다. 또한 국가첨단산업벨트 정책과 연계해 평택·용인·전남·울산 등 주요 거점에 대한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1000조원대 투자 러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이후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구조적 대응”이라며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경제를 살리는 현실적 해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삼성과 SK의 대규모 투자는 단순한 기업 확장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평택과 용인에서 시작된 첨단 산업의 불씨가 전남과 울산, 부산 등 지역으로 번지며 ‘첨단 코리아’ 시대의 새로운 성장축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예인 기자 yi411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