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자원 연료 대체...산업 생태계 선점 우위
‘CCUS 모르타르’ 혁신, 건자재 패러다임 전환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우리나라 건물의 80%가 노후화된 가운데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건축물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제로에너지(ZE), 그린리모델링(GR) 건축은 친환경·에너지 효율 혁신, 일자리 창출, 건물 가치 상승 등 다양한 효과를 앞세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선진국은 이미 민간·공공 부문을 아우르는 중장기 정책에 힘을 싣고 있으나, 국내는 아직 민간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국내 건설사, 건자재 업체, 금융, 에너지관리 솔루션 기업들은 제로에너지 건축 분야에서 혁신적 신기술 개발과 실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스경제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그린리모델링과 제로에너지 건축 활성화의 실효성과 혁신방안, 각 업계의 현장 도전기를 밀도 있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 김종효 기자 | 국내 건설 시장이 유례없는 수요 감소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건자재 산업은 또 다른 구조적인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의무화 확산이다.
ZEB 핵심은 고효율 단열 시스템이나 고성능 창호 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멘트 산업은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 소모와 탄소 배출이 불가피해 기후 위기 대응 최전선에 서 있는 분야다. 전통적인 시멘트 제조사들이 이 환경 규제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향후 수십 년간의 생존과 성장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일시멘트는 친환경 전환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 선제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재의 건설 경기 불황이라는 단기적 위기를 미래 시장 선점 및 고정 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장기적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시멘트 업계가 역대 최저 수준의 수요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한일시멘트는 공격적인 탄소 중립 로드맵 이행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한일시멘트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30% 감축하고 궁극적으로 2050년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설정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2026년까지 총 5179억원을 온실가스 배출 저감 설비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투자 핵심은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소성로 설비 개조에 맞춰져 있다. 소성로 개조가 완료되면 석탄 대신 폐합성수지 등 순환자원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순환자원 대체는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의미가 있다. 우선 시멘트 생산 과정 주 비용인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여 생산 원가를 절감하고 순환자원(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또한 1450℃ 고온에서 순환자원을 연소시키기 때문에 다이옥신 등 기타 유해물질 배출 없이 친환경적 폐기물 처리 역할까지 수행한다. 폐기물 처리 시장 수요를 흡수하는 동시에 미래에 강화될 탄소세나 배출권 구매 비용을 선제적으로 절감해 장기적 원가 구조 우위를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다. 즉 한일시멘트의 대규모 친환경 투자는 건설 불황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경쟁 기업과 격차를 벌리며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시멘트는 2021년 '시멘트그린뉴딜위원회' 출범식에 참여하는 등 정부, 학계, 연구기관과의 정책 공조에도 적극적이다. 시멘트업계는 정부 협력 하에 연구개발(R&D) 지원, 순환자원 확대 사용 기반 구축, 생산구조 전환 지원 등 탄소 중립 신산업 모델 구축을 위한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한일시멘트가 개발하는 친환경 기술이 국내 시멘트 산업 전반 표준 기술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한다.
그린리모델링과 ZEB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한일시멘트의 가장 혁신적 성과는 CO₂ 포집 및 활용 기술(CCUS)을 적용한 건자재 개발이다. 한일시멘트는 국책과제로 진행된 '시멘트 산업 발생 CO₂ 활용 in-situ 탄산화 기술 개발'을 통해 'CO₂ 주입 바닥용 모르타르(레미탈 FS150)'를 개발하고 시험 타설에 성공했다.
기술 핵심은 산업 공정에서 포집한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모르타르 배합 시 주입하는 방식이다. 모르타르 양생 과정에서 CO₂가 시멘트 내에서 탄산화 반응을 유도하며 밀도를 증가시킨다.
이 기술은 전통적 친환경 건자재가 흔히 겪는 친환경성 증대와 성능 저하 사이 딜레마를 완전히 극복하는 이중 혁신을 제공한다.
우선 환경 효과 측면에서 CO₂를 모르타르 내에 가둬 탄소 중립에 기여한다. 또 CO₂ 주입으로 밀도가 증가해 시멘트 사용량을 약 3% 줄여도 동일하거나 향상된 강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한일시멘트는 연간 판매하는 바닥용 모르타르 전량에 이 기술을 적용할 경우 시멘트 사용 저감 효과를 포함해 연간 약 5만톤의 CO₂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성능 효과 측면에서는 모르타르 강도가 약 5% 상향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시멘트 사용량을 줄였음에도 오히려 건축물 내구성과 품질 안정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ZEB는 고효율 단열뿐만 아니라 건물의 장수명화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CO₂ 모르타르는 이 요구 조건을 충족시킨다. 즉 단순 친환경 마감재가 아닌 건물의 생애 주기 탄소 저감 및 구조체 내구성 확보에 기여하는 핵심 자재로 포지셔닝 된다.
신기술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실제 건설 현장에서의 검증과 레퍼런스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일시멘트는 올해 8월 시험 실증을 거쳐 9월 롯데건설과 협력을 통해 이 CO₂ 주입 모르타르를 건설사 최초로 실제 아파트 현장에 타설하며 품질 검증을 완료했다.
이 기술은 롯데건설, 한일시멘트, 유진기업 등 기업체와 서울대학교, 부경대학교 등 학계, 한국석회석연구소, 한국세라믹기술원(KCL) 등 전문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한 국책과제 성과다. 이런 광범위한 산·학·연 협력 체계는 제품의 기술적 신뢰성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향후 ZEB 시장이 확대될 때 필요한 대량 생산 및 공급망 안정화에 유리하다.
롯데건설이 재료 요구 성능 및 품질 기준을 수립하고 한일시멘트가 주입 장치 및 타설 기술을 개발하는 등 역할 분담을 통해 기술 개발 단계부터 현장 니즈를 반영함으로써 시장 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롯데건설 측은 적용 현장을 점차 확대하고 모르타르를 넘어 콘크리트 분야에서도 탄소 저감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혀 한일시멘트와의 협력 기술이 ZEB 확산 핵심 솔루션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초 현장 적용’이라는 레퍼런스는 신뢰성이 중요한 건자재 시장에서 한일시멘트가 후발 주자 대비 압도적인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한일시멘트는 건설 경기 침체와 탄소 규제라는 이중고 속에서 수동적인 방어 전략 대신 대규모 선제적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2026년까지 예정된 5179억원의 친환경 설비 투자는 장기적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재무 전략인 동시에 환경 규제가 심화될수록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전략이다.
또한 CO₂ 주입 모르타르 기술은 그린리모델링 및 ZEB 의무화 시장에서 한일시멘트가 시멘트 및 모르타르를 공급하는 제조업체를 넘어 탄소 저감 솔루션과 고성능 건자재를 제공하는 기술 혁신 기업으로 포지셔닝을 전환하는 핵심 무기다. 이 기술은 환경 기여와 성능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며 건설사의 탄소 저감 목표 달성을 실질적으로 돕는다.
업계 전문가는 “ZEB 의무화가 본격화되고 그린리모델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점에서 친환경성과 고성능을 동시에 갖춘 한일시멘트의 기술은 시장 표준으로 빠르게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한일시멘트의 선제적인 ‘5000억 베팅’은 단기적 불황을 이용해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환경 위기를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치환하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종효 기자 sound@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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