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수의계약 놓고 정계·방사청·업계 간 갈등 심화
일부 정치권 중심 ‘상생’ 포장 다른 방안 부각
업계 특혜 시비·법규 절차 무시·무임승차 우려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HD현대중공업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방위사업청이 2년째 표류 중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사업자 선정 방식을 이달 중 다시 논의한다. KDDX 사업 방식에 대한 안건 상정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해 초 KDDX 기본설계를 담당한 HD현대중공업이 방사청과 상세설계·선도함 건조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과열 경쟁으로 사업이 지연됐다.

최근에는 일부 정치권에서 ‘상생협력 방안’까지 대안으로 제시하며 사업은 장기 표류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정치권과 방사청, 조선업계 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사업 추진 방향이 오히려 불투명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이달 14일 예정된 제132회 방위사업기획관리 분과위원회(분과위)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이 포함된 6개 내외의 안건을 논의한다. 군과 민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분과위에서 심의가 이뤄진 안건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거쳐 의결된다.

이 사업의 개념설계를 담당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과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2년 가까이 경쟁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06년 방사청 개청 이래 진행된 19번의 함정 사업에서 한 번을 제외하고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수의계약을 해 왔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기술 유출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체 간 치열한 경쟁 속에 정치권이 가세하며 얼마 전 당정협의까지 진행했지만 여전히 사업방식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급기야 방사청은 지난달 방사청장을 패싱하고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안감점 기간 연장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특정 업체 밀어주기’란 논란이 불거졌으며 방산업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사업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방안이 오히려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성 성격을 띠고 있고 향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이다.

현행 방위사업법 시행령과 방위사업관리규정에서는 기본설계 내용이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사업의 연속성을 높여 전력화를 앞당기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함정의 상세설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에서의 연구개발 실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기본설계에 문제가 없다면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 HD현대중공업이 수행한 기본설계 내용은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정치권에서 ‘공동 수급 계약(상생협력형)’ 추진을 대안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업체가 물량을 나눠서 건조하는 방식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공동 설계·공동 발주 선례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라며 “현재 해군참모총장이 우려를 표할 만큼 전력화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라 어떤 사업 방식이든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상생협력 방안은 법령에 근거가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원칙과 규정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방사청이 여론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강행하려고 한 것도 정해진 절차와 규정을 따른 만큼 향후 특혜 시비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특혜성 상생협력 방안은 향후 업체들의 연구개발 의지를 꺾고 이를 악용하려는 사례도 발생할 소지가 크다. 수백억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한 기본설계 사업에 굳이 참여하지 않고 상생협력 방안을 주장하며 상세설계에 참여하려는 ‘무임승차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상생협력 방안이 표면적으로는 협력 모델처럼 보이지만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국책사업에서 상생을 내세운다면 서로 다른 업체끼리 한 척의 함정을 설계, 건조하는데 있어 이견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이에 따른 설계변경 등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 소모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실제로 현행 법규와 절차를 무시하는 측면이 있어 방사청 입장에서도 사후 책임 문제를 감안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전했다.

한편 KDDX는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대형 국책 사업으로 사업비만 총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선체부터 전투 체계, 레이더 등 함정에 들어가는 모든 기술이 국내 기술로만 이뤄져 고난이도 사업으로 분류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한 핵심 부대이자 국가 생명줄인 해상 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2월 제주도에서 창설된 해군 기동함대사령부의 미래 핵심 전력역할을 맡게 된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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