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서울 정비사업 수주 실적 역대 최고 수준…대형 건설사 '10조 시대' 가시화
대출 제한·지위양도 규제 강화에 사업 추진 속도 불확실 전망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 연합뉴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 연합뉴스

| 한스경제=한나연 기자 |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도시정비사업에서 이례적인 수주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건설 경기 전반은 침체 국면임에도, 정비사업만큼은 ‘수주 풍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호조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10·15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 조합원 분담금·대출 규제 등 사업 환경이 달라지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이제부터는 속도가 아닌 온도 조절의 시기'라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 현대건설 8조, 삼성물산 7조…정비사업 수주 판도 재편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올해 정비사업 누적 수주는 8조6800억원 수준이다. 장위9구역, 개포주공6·7단지, 압구정2구역 등 서울 핵심지를 집중 공략한 결과다. 이달 장위15구역(1조4600억원 규모)까지 수주할 경우 건설업계 최초로 ‘정비사업 10조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삼성물산도 올해 정비사업 수주액이 7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한남4구역 재개발을 비롯해, 신반포4차, 송파 한양3차 등 경쟁도 높은 지역을 연달아 확보하면서, ‘주택 강자’ 이미지 회복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등도 5조원대 수주고를 올리며 예년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 중이다. 서울·수도권 중심 ‘선별 수주 전략’이 통했고, 미분양 위험이 높은 지방 대신 서울 핵심 구역에 집중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 10·15 대책 이후 조합 부담 확대…‘사업 추진 환경 변화’ 감지

문제는 ‘수주 이후’다. 정부가 발표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정비사업 추진 환경을 크게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규제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규제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며, 조합원 대출 문턱이 높아졌다. 주택 가격에 따라 조합원 대출 한도는 최대 6억원에서 2억원까지 낮아지고, 재건축은 조합설립 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이 적용된다.

이에 조합원 분담금 증가 → 이탈 또는 반대표 증가 → 사업 속도 지연이라는 구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2가구 이상 보유자 경우 1주택만 입주권이 부여되고 나머지는 현금청산 대상이 되면서, 조합 내부 의사결정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한신평, “수주 및 매출기반 위축 가능성”…속도 지연 가능성 언급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규제에 따른 대출 제한 및 실거주 의무 등으로 잠재적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주택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거나 하락 반전할 경우 공사비 상승으로 사업성 이슈를 겪고 있는 정비사업을 비롯한 민간 개발사업의 진행이 지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규제 대상 지역이 전체 분양·입주 예정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나, 지방 분양경기 부진과 수도권 외곽 미분양 확대 속에서 주요 건설사들이 서울 및 수도권 핵심지 정비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오면서 수도권 재개발, 재건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상위권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및 매출기반이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흐름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비사업은 착공까지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고, 이번 규제 역시 사업을 중단시키기보다는 자금 흐름과 추진 속도를 조정하는 역할에 가깝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주 실적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과열된 경쟁 이후엔 사업성이 다시 평가되는 구간이 온 것”이라며 “정비사업 시장이 꺼졌다기보단, 조합 재정·분양성 등을 다시 계산하는 ‘속도 조절기’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한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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