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삼성전자 발주·삼성물산 시공, 위험의 외주화
같은 현장서 반복되는 사고, 안전관리 미흡 지적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삼성전자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기업 현장에는 구조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안전관리는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직결된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기획에서는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추진 중인 리스크 관리 체계, 스마트 안전시스템 도입 사례, 내부 조직문화 변화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개선 시도와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산재 사망 근절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 산업 현장의 실태와 변화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수년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 평택시 고덕산업단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신축 현장에서 지난 6월 협력업체 소속 여성 노동자가 8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시공업체인 삼성물산과 하청업체 관계자 등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현장의 안전관리 실태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같은 현장에서 지난 6년간 6명의 노동자가 유사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음에도 사측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삼성의 ‘안전 경영’ 구호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다. 대형 신축공사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삼성의 안전관리 시스템은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 반복되는 사망사고, 실질적 변화 없는 현장

지난 2016년 이래 평택 반도체공장 신축 현장에서는 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했으며 이중 5명은 모두 추락에 의한 사고였다. 작업 발판 붕괴(2018년), H빔 구조물 위 작업(2016년), 배관 연결 이동 중 추락(2024년), 석고보드로 덮인 개구부 추락(2025년)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됐다. 최근 6월 발생한 사고 피해자는 50대 협력업체 여성 노동자로, 가스배관 작업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석고보드로 덮여 있던 구멍을 발견하지 못하고 추락해 끝내 숨을 거뒀다.

현장은 삼성전자가 발주해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고 있던 구간이었다. 경찰은 삼성물산으로부터 임의제출 받은 자료,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재해조사팀의 조사서, 공사 관계자 등 10여명의 참고인 조사 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끝에 해당 현장의 사고 예방 조치가 미흡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안전관리 전문가는 “석고보드는 덮개가 아니라서 충분한 강도를 갖지 못한다. 석고보드 존치 결정은 현장 책임자가 위험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거나 제도적 승인 없이 방치된 결과”라며 “작업 전 철저한 사전 확인만 이뤄졌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대기업 건설 현장에서 8m가량의 추락 위험이 있는 구멍을 석고보드로 존치해놓은 것 ▲작업 전 위험구역에 대한 사전 점검과 허술한 안전 관리가 참사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성명을 통해 “같은 곳에서 같은 공장을 짓다가 같은 이유로 죽었다”며 “고소작업 등 작업계획서, 작업발판, 추락방지망, 안전대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만 취했다면 없었을 죽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 서초 사옥 전경. / 삼성
삼성 서초 사옥 전경. / 삼성

◆ 초고속 공기(工期)와 안전 경시의 악순환

삼성 평택 반도체 캠퍼스는 단일 라인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P4를 포함한 수조원 규모의 신축 프로젝트에서 ‘불가능한 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평가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지상주의·공기 압박 문화는 작업시간 단축을 위해 안전절차를 무시하는 관행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사고 현장에서는 작업발판이나 추락 방지망 같은 기본적인 안전 장치의 미흡, 작업종료 후 이동 중 급하게 이동하다 사고가 나는 케이스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질식 사망 사건을 되짚어 보면 당시 삼성전자가 공사기간을 3개월 단축하면서 협력업체 노동자는 새벽부터 밤까지 휴일 없이 일해야 했고 아르곤 가스가 빠질 시간조차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무리한 일정 압박이 질식사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고용노동부, 경찰 등 조사 당국에서도 ‘공사 일정 압박’이 하도급사·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며 이 과정에서 안전수칙 준수는 사실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구조적 난맥을 지적했다.

◆ 안전 책임 구조의 모호성과 구조적 하도급 시스템의 그늘

이처럼 현장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의 이면에는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 있다. 삼성물산 등 원청이 시공을 맡고 그 아래에는 수백 개의 협력, 재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실제 위험작업을 담당하지만 실질적 관리·교육의 책임 주체가 모호하다. 하청업체는 원청으로부터 받은 예산 내에서 인건비·안전비용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현장은 낙후된 안전의 사각지대로 남는다.

실제로 최근 사망 사고의 희생자 역시 복잡한 하도급 체계의 최하단에 위치한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이에 따라 원청-하청 간 ‘책임 떠넘기기’와 실질적인 교육 미흡, 보호장비 부족 등의 문제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각종 정부·시민단체 보고서에서도 “추락예방 안전예산만 확보됐어도 근본적으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사고”라는 지적이 나왔다.

◆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의문

지난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대형 사고 발생 시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명문화했지만 삼성 평택 공장은 2024~2025년에도 여전히 반복적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법의 실효성 자체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6월 추락사에 관련해 최근 경찰은 삼성물산 등 원-하청 관계자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입건했지만 구조적 대책 혹은 사고 예방에 결정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하도급 구조, 이름뿐인 안전경영 시스템, 사고발생 책임의 모호성, 형식적 안전교육, 비용절감 논리 등이 맞물려 안전문화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 AI·미래산업 강조 속 현장 안전은 ‘실종’

삼성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를 상징하는 존재다. 삼성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중대재해 제로’(Zero Fatal Accident) 목표, 최첨단 안전설비, 협력사 안전문화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한 삼성이 반복되는 안전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삼성의 안전보고서에 담긴 화려한 수치와 비전은 실제 현장에서 피땀 흘리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원칙을 현장 구석구석까지 관철시키려는 경영진의 진정한 의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 초고속 공기에 대한 압박을 줄이고 하도급 구조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며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길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를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의 경쟁, 그리고 엔비디아 등 글로벌 수주 확대 속에 공정 가속화와 인력 확대가 예고되고 있는데 안전관리 강화 없이는 산업재해와 인명피해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높다. AI 시대 산업 리더로 거듭나려면 삼성전자는 생산량 성과뿐 아니라 대기업다운 안전 리더십을 현장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의 이번 사고가 단순 현장 책임자 개인의 과실을 넘어 원·하청 전체 안전관리 체계의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같은 유형의 사고가 같은 부지에서 반복되는 것은 시스템 결함의 방증”이라며 “삼성물산 등 주요 시공사는 안전을 단순 비용이 아닌 경영의 기본 가치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도 “반도체 산업의 경제적, 안보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대한 목소리 아래 소리 없이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는 삼성전자가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등을 요구한 일이 없는지를 포함해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원청사업주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한다”며 “다시는 삼성반도체 공장을 짓다가, 삼성에서 일하다가 죽는 노동자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예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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