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길가의 큰 불탑과 룽다가 깃발을 펄럭이며 우리를 맞는다. 불탑은 길링 마을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 아래 펑퍼짐한 계곡에 들어선 길링이 빤히 보인다. 마을 위 언덕배기에 두 개의 곰파와 폐허가 된 요새 유적이 눈에 띈다. 로만탕에 가까워질수록 불교 색이 짙어지며 마니월, 마니차 등 불교 상징물을 자주 만난다. 길링도 사마르와 함께 60년대 캄파 게릴라의 주 활동무대였다. 당시 캄파 게릴라들은 땔감을 징수하고 야크 등 가축을 훔치는 등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마을 북쪽 언덕 위에 있는 타시초링 곰파를 들른다. 아래쪽 큰 곰파가 본당이고 위쪽 건물은 곤캉(Gon-khang)이다. 곤캉이란 마하칼라 등 힌두교에서 티베트 불교로 흡수된 신들을 수호신으로 모신 법당이다. 우리나라의 절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 같은 것이다. 이곳 곰파의 벽화는 17세기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났는데 복구한답시고 비전문가들이 더 엉터리로 만들어 놨다고 한다. 또 타시초링 곰파는 돌덩이처럼 박제된 사람의 오른손으로 관심을 끈다. 따로 보관해 둔 줄 알았는데 불단 탁자 위에 그냥 올려 두고 있다. 시커먼 손이 신기하다. 곰파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킨 도둑의 잘린 손이라는 설과 같은 모양의 요새를 짓지 못하도록 자른 건축가의 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길링에서 게미 마을까지 인적이 끊긴 삭막한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주홍, 보라, 갈색 등으로 채색된 벌거숭이 산줄기와 절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언덕중턱에서 지팡이를 짚고 혼자 외롭게 앉아있는 목부를 만난다.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파른 산 사면에 백여 마리의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나이가 42살이라는데 얼핏 보면 60대 노인네 같다. 강한 자외선에 검게 탄 데다 주름살이 깊게 파여서 늙어 보인다. 고도가 높고 물이 귀한 히말라야 고원 지대의 원주민들은 강한 자외선에 속수무책인 데다 씻지를 못해 우리보다 20년은 더 늙어 보인다.
헝겊 배낭을 뒤적이더니 플라스틱 병을 꺼내 티베트 전통술로 막걸리 비슷한 창을 한잔 권한다. 사양하고 초콜릿과 사탕을 한 움쿰 주니 고마워한다. 건조한 뙤약볕 아래서 홀로 자연과 염소를 벗 삼아 생활하는 목부의 외로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부의 증가와 문명의 이기는 진정으로 우리를 안락하고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 것일까? 한강의 기적 소리를 들으며 짧은 기간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며 1인당 GNI(국민총소득)가 3만4000달러에 근접하는 선진국 문턱에 다가선 한국은 행복한 나라인가? 외국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우리는 진정 질 높은 삶을 살고 있는가? 국가소멸 위기론까지 나오는 초저출산율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율, 고독사와 우울증, 노인 빈곤, 1인 가구 증가 등은 물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단절과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무스탕 남자들은 평생 세 가지 직업을 가진다고 한다. 봄에는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로, 여름이면 염소, 양, 소, 야크 등 가축을 몰고 풀이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방목하며 생활하는 유목민이 된다. 그리고 겨울에는 티베트와 인도를 오가며 물건을 사고팔면서 돈을 버는 장사꾼으로 변신한다. 대개 지대가 낮은 네팔이나 인도보다는 기후, 토양 등 환경이 비슷한 히말라야 위쪽인 티베트로 많이 다녔다 한다. 무스탕 남자들은 고도가 낮고 습한 네팔이나 인도로 내려가면 설사, 이질 등 이른바 ‘저산병’으로 고생한다. 무스탕은 태양 빛이 강하고 건조해 곰팡이나 세균, 박테리아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지역이다. 지대가 낮은 네팔이나 인도는 덥고 습해서 박테리아 번식이 왕성하므로 면역력이 약한 무스탕 사람들은 쉽게 병에 걸린다. 실제로 티베트어로 ‘설사’라는 말은 ‘인도로 가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티베트 순례자 중 인도의 성지에서 이 ‘거룩한’ 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저만치 올려다보였던 니라(Nyi La.4,050m)에 올라선다. 히말라야에서는 4,000m대 패스는 이웃 동네 마실 다닐 때 넘는 고개 정도로 생각한다. 게미마을이 발밑으로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뒤쪽으로 붉은 절벽의 닥마르도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낸다. 오른쪽으로는 만년설의 안나푸르나 산군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여인네의 젖무덤 같은 곡선의 민둥산들이 너울너울 겹을 이루며 춤을 춘다. 이 옛 교역로는 수천 년간 말과 마방의 발길에 의해 다져진 역사의 길로 신작로의 개통과 함께 박제화되며 점차 잊혀가고 있다. 그나마 외국인 트레커들이 꾸준히 찾아들면서 길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 싶다. 게미마을 아래 계곡 건너 절벽 쪽으로 긴 마니월이 보인다. 무스탕에서 제일 긴, 파드마 삼바바의 전설이 깃든 마니월이라 더 유명하다. 마니월은 길이가 30m로 단일 마니월로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길다. 마지막 깔딱 고개인 게미라를 힘겹게 넘은 후 게미(Ghemi.3510m)마을로 접어든다. 오는 도중 트레커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트레킹 시작 이래 며칠간 외국인 트레커를 거의 보지 못했다.
게미는 로만탕과 차랑에 이어 무스탕에서 세 번째로 큰 절벽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무스탕에서 비교적 들판이 넓고 기후가 온화한 마을 중의 하나다. 바람이 약하고 토질이 좋아 농사가 잘 된다. 여름에는 메밀과 겨자밭이 마을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마을 중앙 공동수도 터에 서너 명의 아낙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세상 걱정 없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표정들이다. 그 옆 베틀에 앉아 손발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천을 짜던 아낙네가 일손을 멈추고 포즈를 취해준다. 집안을 구경해도 되냐니까 흔쾌히 허락한다. 1층은 베틀 작업장과 가축우리가 있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니 좁은 부엌과 침실이 같이 붙어있다.
짐을 실은 말 10여 마리가 방울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무스탕에서는 여전히 말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도로가 뚫려 지프차나 일부 구간은 대중교통 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지세가 험한 대부분의 깊숙한 오지마을은 아직도 이동이나 짐 운송에 말을 활용하고 있다.
퇴락해 가는 곰파 입구에서 복구 공사가 한창이다. 아낙네들이 손수레에 흙과 벽돌을 실어 나른다. 20루피를 내고 곰파에 들어간다. 1층 대법당의 부처상과 불화를 둘러보고 불경 읊는 소리가 들리는 2층으로 올라간다. 마침 제례의식 중이다. 어두컴컴한 법당 안에서 열대여섯 명의 라마승들이 고동 나발과 3m는 됨직한 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면서 염송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과 불구로 가득 찬 법당 분위기, 낮은 저음의 바이브레이션이 섞인 염송 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400년 된 곰파로 법당 안은 지워지고 변색 된 불화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마을 주변의 봉우리와 계곡, 절벽 등이 비바람에 풍화되고 깎이면서 거대한 자연의 조각품처럼 보인다. 게미 마을 역시 티베트독립을 위해 중국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쳤던 캄파 게릴라의 마지막 진지가 있던 마을이다. 숲이 없는 무스탕에서 동굴은 게릴라들의 좋은 은신처 역할을 했다. 게미에서 목적지인 닥마르까지는 걸어서 2시간 거리다. 마을 밖 고목 나무가 숲을 이룬 계곡을 지나 산등성이를 타고 오른다. 계곡 숲이 제법 울창하고 나무다리 밑으로 수량이 많은 맑은 물이 거세게 흐른다. 작은 숲을 벗어나자 또다시 황량함이 메마른 대지를 덮는다.
계곡을 타고 언덕마루를 몇 개 오르내리다 보니 붉은 절벽이 병풍을 두른 닥마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붉은 사암 절벽 곳곳에 동굴이 보인다. 먼 옛날 무스탕에 첫발을 디딘 최초 도래인들이 살았다는 동굴이다. 절벽 중간에 동굴들이 밀집해 있고 한 동굴 앞에는 룽다와 타루쵸가 휘날리며 얼핏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동굴사원이다. 이 절벽동굴을 보면서 혹독하고 척박한 땅에서 원시의 시대를 살았던 혈거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마을 맨 위 롯지에서 서양인 10여 명을 만나 반갑게 인사한다. 프랑스와 독일 여행자들로 지프를 타고 여행 중이란다. 뜨거운 물이 나와 오랜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김성태 사진작가 taiki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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