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가 김성태 사진작가의 오지 여행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 기자로서 쌓은 날카로운 시선과 사진가로서의 섬세한 감각이 어우러져, 히말라야부터 파타고니아까지 세계 각지의 숨겨진 풍광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김성태 작가는 먼저 마지막 남은 히말라야의 숨은 오지 무스탕을 찾아 그곳의 자연과 사람, 문화를 깊이 있게 기록할 예정입니다. 그의 여정을 통해 독자들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걷기 철학과 삶의 의미를 함께 탐구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한스경제] 금단의 땅, 은둔의 왕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이한 살아 숨 쉬는 지형박물관, 마지막 남은 히말라야의 숨은 오지....
그동안 문명의 세계와 단절된 채 히말라야 깊숙이 고립된 채 숨어있던 무스탕 왕국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척박한 불모의 땅, 세계에서 가장 깊고 긴 계곡 중의 하나인 히말라야 오지 칼리간다키 협곡에서 쇠심줄 같은 생명력으로 전통적인 옛 삶을 살아온 무스탕 왕국. 불과 반세기 전 만 해도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수도인 로만탕 왕궁에 왕과 왕비가 생존해 있었던 영화에나 나올법한 전설 속의 왕국 같은 존재였다. 특히 고대 티베트 불교나 고유 전통문화, 생활상 등 옛 티베트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무스탕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나 진배없다. 네팔 속의 작은 티베트로 불릴 정도로 티베트보다 더 티베트답다는 소리를 듣는다.
무스탕은 1992년에야 외국인에게 출입을 허용하면서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지금도 1년에 1,000명 이내로 외국인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여기에 최소 2인 이상에 한 사람당 500달러(10일)의 퍼밋 비용을 내고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10일 초과 시 추가 비용이나 부대 수수료 부담 등을 감안할 때 비용 등 여러 측면서 접근이 쉽지 않은 히말라야의 오지 중의 오지다.
무스탕은 멈춰선 시간 속에 박제화된, 아니 시간과 공간의 순간이동을 통해 도착한 어느 이름 모를 신비의 고대 왕국 같은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때로 얼룩진 고대 무스탕의 모습에 650년 역사의 영고성쇠가 그대로 배어있다. 거센 바람을 품으며 4,000~5,000m의 삭막한 고개 마루턱에 서 있는 마니퇴나 룽다의 깃발은 불국토로 들어가는 길잡이처럼 보인다.
바람을 박차고 힘차게 달리는 말의 갈기처럼 펄럭이는 룽다(風馬)와 하늘을 가르는 타루초의 깃발이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메마르고 삭막한 천형의 땅에 신성(神性)을 입힌다. 온갖 풍상을 견디며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초르텐(불탑) 천정의 만다라에서 무스탕 사람들의 신실한 불심이 읽힌다. 바람에 아우성치는 룽다나 타루초의 깃발 소리가 인간이 신에게 보내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바싹 메마른 황량함속에 간절한 염원과 심오한 불심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온 우주를 불심과 자비로 감싸 안는 것 같다. 바람 소리가 우주와 공명하며 보이지 않는 파동과 신비로움으로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부처의 마음이 따로 없다. 깊은 울림과 신성을 느끼는 지금의 마음 떨림이 불국토가 아닌가 싶다.
‘로바’라 불리는 무스탕 사람들은 물이 귀한데다 척박한 자연과 하나 되어 석기시대를 연상케 하는 반유목민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 환경이나 여건, 행색이 거칠고 남루하고 투박해 보인다. 그러나 마음만은 히말라야를 닮아 그런지 순수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자비롭다. 전혀 경계심 없이 따뜻한 미소와 너그러움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부처가 보인다.
근래 들어 히말라야의 갈라파고스 같았던 무스탕이 변화의 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비껴갔던 개방과 산업화 등 거센 바깥 바람이 때 묻지 않은 무스탕을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어 포카라에서 좀솜, 묵티나트까지 걸어서 일주일 이상 걸렸다. 사람의 발이나 말과 나귀가 주요 운송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포카라에서 좀솜까지 비행기로 20분, 지프차로 8시간이면 널널하게 올 수 있다. 특히 최근에 좀솜서 무스탕을 가로질러 티베트 국경인 코라라(Korala)까지 지프차가 다닐 수 있는 코라라 하이웨이가 확장 개통됐다. 문명의 통로인 신작로가 열리면서 상하 무스탕이 하루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과거 속에 갇혀있던 무스탕이 개방과 변화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리며 전통과의 급격한 단절과 이에 따른 정체성의 훼손, 가치관과 생활관의 전도(轉倒), 경쟁과 비교에 따른 상실감의 증가 등 많은 내상(內傷)을 입고 있다.
무스탕은 숨겨진 히말라야의 속살답게 다양한 기후풍토에 천의 얼굴을 가진 히말라야에서도 손에 꼽히는 특이하면서도 아름답고 웅장한 풍광을 자랑한다. ‘황량한 아름다움의 극치’ 그 자체이다. 마치 이름 모를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듯 눈에 들어오는 낯설면서도 경이로운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다. 신공귀부(神工鬼斧), 신의 손길이나 귀신의 도끼를 거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하고 멋진 풍광들... 신들의 정원에 전시된 지상 최대의 자연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그만큼 아름답고 특이하고 장대하다.
여기에 오염과 세파에 찌든 바깥세상과 대비가 돼서 그런지 거칠고 투박한 날 냄새 나는 태곳적 모습의 청정자연생태계가 무스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쉽지 않은 접근성에 절벽 동굴 등 신화와 전설 수준의 유적과 희미한 삶의 흔적들, 과거에 머물러있는 때 묻지 않은 낯설고 이국적인 고대 티베트왕국의 모습 등은 오지 탐험가나 트레커들을 매혹의 세계로 이끈다.
특히 파이프오르간이나 고대 건축물의 거대한 석주 형상의 천애 절벽에 벌집처럼 들어선 수많은 절벽 동굴은 무스탕을 더욱 불가사의한 신비의 베일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들 깊고 높은 협곡과 절벽, 선사시대 혈거인이 살았다는 공중 동굴 등에는 티베트 불교를 일으킨 종조 파드마삼바바와 관련한 많은 전설과 신화가 전해진다.
구글 지도를 보면 2,500km에 이르는 히말라야산맥은 동쪽의 부탄, 시킴에서 시작, 네팔 중부에 다달아 하늘을 찌르는 최고봉의 거대 산군을 이룬다. 그러다 무스탕과 돌포에 이르러 자세를 낮추며 티베트고원과 이어지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산세도 황량한 무채색의 고산 사막지대나 높고 깊은 절벽과 협곡이 이어지는 벌거숭이의 특이지형으로 바뀐다. 이같은 바싹 메마른 기후풍토와 외계행성에서나 볼듯한 독특한 풍광은 북인도 잔스카르, 카슈미르, 라다크로 이어진다.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의 데오사이 고원으로 뻗어나가다 해발 8,125m 높이의 낭가파르밧과 만난다. 히말라야산맥 서쪽 끝자락에 있는 낭가파르밧은 인더스강에 막혀 맥이 끊기면서 히말라야산맥으로서의 명을 다 한다.
무스탕 트레킹은 시공간을 거슬러 시간이 멈춰 선 과거 속, 꿈결 같은 전설의 왕국에서 노닐다 온 느낌이다. 순례자의 은혜 같은 깊고 잔잔한 울림과 감동... 아직도 가슴 깊숙이 여운으로 남아있는 고행에 가까운 영혼의 순례길 같은 트레킹이 아니었나 싶다.
은퇴 후 히말라야의 속살과 진하게 몸을 섞으며 히말라야 구석구석을 뒤지며 걸어 다닌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8,000m가 넘는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이어 몇 년 전부터 인간이 숨어들어 천년 삶의 터전을 닦아온 돌포, 라다크, 잔스카르 등 해발 4~6,000m의 히말라야 고산 사막지대 트레일을 찾아다녔다. 옛 티베트로 연결된 히말라야의 주요 교역로였던 무스탕 트레일을 완주했다. 이번 무스탕 트레킹으로 3개국(네팔, 북인도, 시킴, 파키스탄)에 걸쳐있는 히말라야의 특이하고 멋진 고산 사막 지형의 별천지 같은 숨은 비경의 트레일을 대충 걷지 않았나 싶다.
무스탕 왕국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혹독하고 척박한 기후환경에도 불구, 불심의 힘으로 삶의 터전을 일궈낸 이주 티베트인들의 끈질긴 인간 승리의 현장이자 고대 티베트 불교의 성지이다. 무스탕이 피할 수 없는 개방과 변화의 파고를 뛰어넘어 이상향인 히말라야나 티베트 불교처럼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태 사진작가 taiki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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