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만년설의 히말라야 연봉이 햇빛에 반짝이며 눈 아래 있다. 비행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산맥이 구름에 잠긴 채 몽유도원도처럼 펼쳐진다. 꿈속처럼 아련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은빛 히말라야의 웅자에,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벅차오르던 가슴이 턱 막힐 지경이다. 우주 속 조그만 행성인 지구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 같은 히말라야가 내 품에 안기는 듯 하다.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기운이 신의 숨결처럼 온몸을 감싼다. 히말라야를 대할 때마다 경험하는 정신적 감응이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마음은 지구의 용마루인 히말라야 만년설과 빙하 위를 날고 있다. 하늘서 히말라야를 내려다보면 광대무변한 우주와 대자연에서 티끌에도 못 미치는 인간의 하찮음과 위대성을 동시에 느낀다. 깊고 높고 넓은 그리고 다양하고 심오한 대자연과 세상사를 접하다 보면 내 생각과 시각이, 느끼고 받아들이는 마음자리의 넓이와 깊이가 얼마나 좁고 얕고 편협한지 새삼 느낀다. 오지 여행은 나를 인식하고 자각하게 하는 각성제 역할을 한다.
카투만두서 이륙한 비행기가 히말라야 상공을 가로질러 포카라 신공항에 내린다. 새로 지어 확장 이전한 포카라 국제공항은 2023년 1월 개항했다. 비행기에서 짐을 내려 리어카에 싣고 오면 각자 알아서 짐을 찾았던 구 공항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포카라에서 무스탕의 관문인 좀솜까지는 비행기로 가거나 지프차,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해 갈 수 있다. 비행기로는 25분 안팎, 지프차로는 8~9시간이 걸린다. 포카라~좀솜 항공편은 죽 끓듯 하는 변덕 날씨 때문에 결항을 밥 먹듯이 한다. 낮부터 휘몰아치는 강풍을 피해 이른 아침에 운항한다. 지프차 이동도 만만치 않다. 좁고 험한 비포장길에 길이 자주 끊긴다. 특히 우기 때는 궂은 날씨에 잦은 산사태 등으로 육로는 물론 항공편도 여러 날 발이 묶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길고 험한 무스탕 가는 길. 히말라야답게 비포장에 좁고 험하고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진창길에 수시로 낙석이 떨어지고...
포카라 시내를 벗어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변의 염소 시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왼쪽 도로변 공터나 언덕배기 여유 공간에는 수십, 수백 마리의 염소 떼들이 무리지어 시끄럽게 울어댄다, 외곽 도로변이 2km 가까이 염소들로 뒤덮여 시장을 방불케 한다. 네팔의 최대 힌두 축제인 다샤인 축제기간 (9월19~10월3일)에 대규모 염소시장이 열리는데 이때 6만~7만5000마리의 염소가 식용으로 소비된다. 다샤인 힌두축제 기간 중 마지막 3일은 염소를 잡아 신에게 바치고 가족들이 마음껏 먹는 행사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강 따라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는 거의 오프로드 수준에 언제 바위가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낙석위험지대다. 엉덩이가 바닥에 붙어있지 못할 정도로 길이 거칠고 험하다. 우기 때 산사태나 도로 붕괴로 여기저기 응급 복구한 흔적이 보인다. 나야풀 현지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계곡 밑을 달리는데 저 멀리 새까만 높이의 허공에 출렁다리가 떠있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높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높은 철제 출렁다리(현수교) 중의 하나인 칼라간다키 골든 브릿지다. 길이 567m, 높이 122m로 보행자 전용 현수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였다. 2022년 체코 스카이브릿지 721이 개통되면서 두 번째 긴 다리로 밀렸다. 어른 612명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걷기 전용 현수교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강 밑을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일 정도로 까마득하다.
온천마을인 따또파니에서 온천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마르파 못미쳐 도로변의 거대한 룹세폭포(Rupse Falls)가 여행객을 맞는다. 이 폭포는 포카라에서 110km 못 미친 다나 지역의 강가 도로에 있다. 도로 옆 가파른 산 사면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높이가 300m에 달하고 수량도 풍부해 웅장해 보인다. 그러나 주변이 밋밋한 바위 투성이의 평범한 풍경인데다 휴게시설, 걷기 길 등 인프라가 미비해 지나가다 잠시 멈추고 둘러보는 일과성 관광지다. 지프차가 요동을 치며 우기 때 많이 패인 비포장도로를 용케도 잘 달린다. 저 앞에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산사태로 길이 끊겨 불도저가 한참 복구작업 중이다. 4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임시로 이어진 도로를 통과해 달린다.
과거 티베트와 인도를 잇는 히말라야 무역의 거점이자 주요 사과단지인 마르파(2670m)에 들러 마을을 둘러본다. 마을 입구 불탑의 타원형 문을 들어서면 2~3m 높이의 전통 석조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 아담한 호텔,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카페, 기념품점, 사과 가게 등이 줄지어 나온다. 티베트 전통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하무스탕의 전형적인 시골 관광마을로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성곽처럼 높은 흰색의 돌집과 예쁘게 장식한 나무 문과 창, 거미줄같이 뒤엉킨 좁고 높은 골목길, 미소가 가득한 온화한 얼굴, 반갑게 맞아주는 붙임성 등이 여행객들을 고향마을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해준다.
마르파는 열심히 일하는(mar)사람(pa)을 의미한다. 몽골족 후예인 타칼리족의 근면성과 히말라야 무역을 일궜던 땀과 노력이 지명에서 읽힌다. 사각형의 돌집 200여 가구가 거미줄 같은 좁은 골목을 사이로 요새처럼 들어서 있다. 네모 난 지붕에 룽다가 펄럭이는 티베트 양식의 전통 마을로 고색이 짙다. 마을 중앙의 타시라캉 곰파는 200년 역사의 고찰이다. 마을 산 중턱에 맘티(Mamti)동굴이 있고 북쪽 바위 절벽에는 흰색, 황토색 등으로 채색된 3개의 곰파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뒷산 정상에 흰색의 거대한 삼각형 바위가 보이는 곳이 리숨곰파다.
뒷쪽으로는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만년설의 다울라기리(8167m)가 수호신처럼 서있다. 마르파는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 가는 길목으로 베이스캠프 들어가는 체크 포스트와 함께 이정표가 서있다. 마르파는 네팔내 최대의 사과산지로 꼽힌다. 1966년 부터 사과를 심기 시작해 네팔 최고 품질의 사과 명산지로 자리매김했다. 사과 주산지답게 사과 브랜디, 사과파이, 사과사이다, 사과 피클 등 다양한 제품이 관광객들의 입맛을 돋운다. 사과마을을 상징하는 대형의 사과 조형물이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강변 등 마을 주변은 모두 사과밭으로 녹색이다. 아기 주먹만 한 사과가 단단하고 과즙이 많은 데다 달고 새큼해 맛이 일품이다. 타칼리족은 몽골족 후손이지만 티베트불교를 믿는다. 마르파 인근 차이로 마을에 티베트 난민촌이 있다.
좀솜 가까이 오면서 닐기리, 다울리기리 등 만년설산이 보인다. 바람이 세지면서 모래 먼지가 시야를 가리며 풍경을 지운다. 저 앞 좀솜 공항 활주로가 보이는데 비행기는 한 대도 없고 저만치 공항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좀솜(2720m)은 여전히 모래바람이 부는 우중충한 잿빛 분위기다. 그러나 공항은 활주로가 포장되고 청사도 번듯하게 들어서는 등 새롭게 단장한 모습이다.
1964년 좀솜은 소수의 군인이 주둔하는 체크 포스트가 있는 조그만 오지마을이었다(미셀 페이셀의 여행기). 1970년대부터 이곳에 행정기관이 들어서면서 무스탕의 행정 상업,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 이곳 바람은 워낙 악명이 높아 비행기도 10시 넘으면 운항이 불가능할 정도다.
좀솜서 카그베니로 가는 도중 도로변에 무스탕 방문을 환영하는 전통 복장을 한 세 명의 여인 동상이 우리를 맞는다. 롯지마을인 애클로바티를 지나 무스탕 트레킹의 전초기지인 카그베니에 도착한다. 카그베니부터 무스탕 트레킹이 시작된다. 지도를 보면 무스탕은 안나푸르나(8091m)와 다울라기리(8167m) 사이를 흐르는 칼리간다키강 최상류, 티베트 쪽 히말라야산맥 뒤편 깊숙이 숨어있다. 무스탕을 품고 있는 칼리간다키 계곡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고 험한 계곡 중의 하나다.
김성태 사진작가 taiki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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