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고예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예고에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반도체 관세가 본격화하면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관세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반도체는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품목에선 일단 제외됐으나 대미 수출액 3, 6위인 메모리모듈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이미 리스트에 오르면서 직접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반도체는 중간재인 만큼 간접적으로 관세 영향을 받게 되며 여기에 품목별 관세까지 적용될 경우 관세 영향권 안에 놓일 수 밖에 없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마이애미로 이동하는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관세)가 아주 곧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약(관세)은 별개의 범주”라면서 “가까운 미래에 발표할 것이며, 현재 검토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힌데 이어 반도체 관세까지 조만간 도입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 1, 2위 품목이 모두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 10%의 기본관세(보편관세)와 국가별로 관세율에 차등을 두는 상호관세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상호관세 행정명령 부속서에서 한국산 수입품 관세율을 26%로 적시한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한국 관세율을 25%로 정정했다.
반도체의 추가 관세와 더불어 천문학적인 반도체 보조금을 축소하겠다는 압박도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반도체지원법(CHIPs Act)’ 폐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해당 법안에 기반한 보조금 지급 역시 불투명해진 상태다.
현재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건설 중이며, 바이든 정부로부터 약속 받은 전체 투자금의 약 12.8%에 해당하는 47억4500만 달러(약 6조9500억 원)의 보조금을 다 받지 못한 상태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추진 중이었으나 보조금 지급이 불투명해지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 “반도체지원법은 끔찍한 법안으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주지만, 그들은 우리의 돈을 가져가서 쓰지 않고 있다”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그 돈으로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전자부품 업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동남아시아를 겨냥한 ‘트럼프발 상호관세’에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을 비롯한 전자 부품업체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품업계도 관세 직격탄은 빗겨나 있으나 간접적 영향이 예상된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중국을 포함해 동남아 여러 지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양사 베트남 공장의 고객사는 대부분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세트업체들로 알려졌다.
삼성전기는 첨단 반도체 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와 카메라 모듈을, LG이노텍은 카메라 모듈을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폭증한 관세 탓에 세트업체들이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등의 제품 가격을 인상하게 되면 소비자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기의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을 공급받는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물량의 50% 이상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의존도가 높은 LG이노텍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LG이노텍은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한 카메라 모듈을 아이폰 제조 공장인 중국 폭스콘으로 수출한다.
업계에서는 애플은 전 세계 아이폰 판매 물량의 9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데 이번 관세 여파로 아이폰 가격이 현재보다 30∼40%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중국 업체들의 애플 공급망 진입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던 LG이노텍은 다시 한번 애플의 부품가 하락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완제품 가격 인상이나 부품가 인하 압박이 실현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국내를 비롯한 관세가 낮은 지역으로 옮겨 오는 게 현실적 대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예인 기자 yi411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