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새롭게 등장할 통상위험 ‘마라라고 합의’도 주시해야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세계 주요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며 글로벌 무역전쟁이 현실화됐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가에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을 비롯한 약 60개국에는 더 높은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별 상호 관세율을 살펴보면 한국 25%, 영국 10%, 유럽연합(EU) 20%, 일본 24%, 말레이시아 24%, 인도 26%, 남아프리카공화국 30%, 스위스 31%, 인도네시아 32%, 대만 32%, 중국 34%, 태국 36%, 베트남 46%, 캄보디아 49% 등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체제인 한국은 일본(24%), 유럽연합(20%) 등보다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돼 미국 시장에서 주요 경쟁 상대인 일본, 유럽연합의 기업들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직전연도보다 10.4% 증가한 1278억달러에 이른다. 또 지난해 한국의 대미국 무역수지는 557억달러 흑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은 ▲자동차 ▲반도체 ▲석유제품 ▲배터리 등이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수입 규모 기준으로 한국은 올해 1월 10위(전체 물량 중 3.4%)를 기록했다. 나라별로는 멕시코·중국·캐나다·스위스·독일·아일랜드·베트남·일본·대만 등이 한국에 앞서 있었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현재 사실상 관세가 없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는 미국 국가비상경제권법에 근거해 모든 국가에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주요 무역적자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형태다. 한국에 적용되는 25% 관세는 기본관세 10%에 상호관세 15%를 합산한 수치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기본관세는 오는 5일부터, 국가별 상호관세는 9일부터 발효된다.
정부는 미국의 26% 상호관세율이 발표되자 3일 오전 7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를 개최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한덕수 권한대행, 최상목 경제부총리, 안덕근 산업부장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박성택 산업부 1차관, 김홍균 외교부 1차관, 남형기 국조실 국무2차장 등이 참석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글로벌 관세전쟁이 현실로 다가온 매우 엄중한 상황인 만큼 통상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자리한 안덕근 산업부 장관에게는 “기업과 함께 오늘 발표된 상호관세의 상세 내용과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협상의 장이 열리는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미협상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하며 “자동차 등 미 정부의 관세 부과로 영향을 받을 업종과 기업에 대한 긴급 지원대책도 범정부 차원에서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이어 안덕근 장관 주재로 ‘민관합동 미 관세조치 대책회의’를 열어 정부 차원의 다각적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안 장관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의 미국 방문을 포함해 각 채널을 통한 긴밀한 대미 협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산업계와 긴밀한 협력 속에 업종별 맞춤형 지원책을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는 대한상의, 무역협회, 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 대표들이 총출동했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주요 산업계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상호관세가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과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정부는 장관급과 실무급을 망라한 입체적 대미 협상을 약속하며, 피해 업종에 대한 구체적 영향 분석과 신속한 지원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산업부는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구리·의약품·반도체·목재, 에너지 및 미국 내 미생산 일부 광물 등 이미 별도 관세가 부과된 품목에는 이번 상호관세가 중복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호관세에 이어 향후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통상위험으론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가 꼽힌다. 마라라고 합의는 제2의 플라자 합의라 불릴 정도로 세계 금융 질서를 완전히 새로 짜는 구상을 담고 있다. 이 구상은 ‘미란 보고서’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 이후 발표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보고서다.
보고서의 핵심은 구조적인 강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란 위원장은 보고서를 통해 “달러 수요 과잉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진단한다. 해법으로 동맹국과의 비용 분담, 관세를 통한 압박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이번 상호관세는 이 보고서의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미란 위원장은 “관세는 세수 확보, 무역 불균형 해소, 경제적 레버리지 확보, 외교정책 강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월스트리를 비롯한 각국에서는 이번 상호관세 부과가 미란보고서가 제시한 ‘강한 달러 문제 해결’과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경제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조치로, 특히 미란 위원장이 제안한 관세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된 사례로 평가한다.
이에 대해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前청와대 정책조정수석·前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마라라고 합의'를 주목해봐야 한다고 했다. 현 이사장은 “마라라고 합의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연상케 하는 새로운 통화 협정으로, 미국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동맹국에 안보 보장과 시장 접근성을 제공하는 대신 이들 국가는 달러 약세에 협조하고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비유통 채권(century bond)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주목할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마라라고 합의에 동참하는 국가에는 낮은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플라자 합의가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절상을 통해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도모했다면, 마라라고 합의는 더 광범위한 전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란 설명이다. 당시 플라자 협정 때에는 일본 엔화 가치가 급등해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던 전례가 있었다.
권선형 기자 peter@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