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기상이변까지... CO₂ 농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어
WMO 사무총장 "1.5도 넘었지만 목표 달성 물거품 된 건 아니야“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80만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또한 지난해는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이자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이 처음으로 섭씨 1.5도를 넘겼으며, 이에 따라 전례 없는 기상이변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의 징후가 지난해 새로운 최고점에 도달했다. 이번 연구·조사 결과는 ▲21일 ‘세계 빙하의 날’ ▲22일 ‘세계 물의 날’ ▲23일 ‘세계 기상의 날’을 앞두고 공개됐다.
지난해 전 세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평균 대비 1.55도(±0.13도) 상승한 것으로 기록됐다. WMO는 175년 관측 역사상 가장 따뜻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이전까지 가장 따뜻했던 해로 기록됐던 2023년의 경우, 산업화 이전 평균보다 1.45도(0.12도) 높았는데 1년 만에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10년 단위로 살펴봐도 2015~2024년은 가장 따뜻한 10년으로 나타났다.
WMO는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은 연초에 정점을 찍은 엘니뇨를 비롯한 다른 요인들이 사상 최고 수준의 온실가스 농도와 맞물린 영향으로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해 6~12월 평균 기온은 2023년 이전 모든 월 평균 기온을 갈아엎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또한 80만 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 관측값인 2023년 이산화탄소 농도는 420.0±0.1ppm(1ppm=100만분의 1)이다. 이를 톤(t)으로 환산하면 3조2760억t에 이르는 양이다. 2022년보다 2.3ppm 증가했고, 산업화 이전 대비 151% 높은 수치다.
다른 주요 온실가스인 메탄과 아산화질소 농도도 2023년 기준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메탄 농도는 1934±2ppb(1ppb=10억분의 1)로 산업화 이전 대비 265%, 아산화질소는 336.9±0.1ppb로 125% 증가했다. WMO는 “실시간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이들 온실가스의 농도는 올해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해양 온도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닷속 열에너지 총량을 지칭하는 ‘해양 열량’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 온도는 2005년 이전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해빙(海氷)이 줄고, 해수면 상승은 빨라졌다. 북극 해빙 면적은 지난 18년간 역대 최저 기록을 매년 갈아치웠고, 남극 해빙도 지난 3년간 최저 기록을 연일 기록하고 있다. 해수면은 2015~2024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4.7㎜씩 높아졌다. 이는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2.1㎜ 상승)보다 두 배 이상 빠른 것이다.
WMO는 해수면과 해양 온도 상승을 되돌리기까지 최소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셀레스테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지구 표면에서 얼어 있는 영역(크라이오스피어, cryosphere)이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녹고 있다”며 “특히 2022~2024년 사이 사상 최대 규모의 빙하 손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전례 없는 기상 이변이 150건 이상 발생했다. 기상 이변은 인명 피해와 건물 파괴 등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80만 명 이상이 이재민이 됐는데, 이는 2008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일례로 일본에서는 폭염으로 수십만 명이 열사병에 시달렸고, 호주 서부 카너본에서는 기온이 섭씨 49.9도까지 치솟았으며, 이란 타바스에서는 49.7도, 아프리카 말리는 48.5도에 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홍수·산사태·정전이 발생했고, 파키스탄과 브라질에서는 갑작스러운 홍수로 한 해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허리케인도 더 강력해졌다. 필리핀에는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6개의 태풍이 상륙했고, 허리케인 ‘헬렌’은 미국 플로리다주 빅벤드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기록됐다. 베트남은 슈퍼 태풍 ‘야기’의 직격탄을 맞아 약 360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이 밖에 기록되지 못한 전례 없는 기상 이변이 더 많을 것으로 WMO는 추정했다.
◆ 경고 계속되지만...온실가스 감축 ‘난항’
앞서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밑으로 억제하며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이 중 ‘상승 폭 1.5도’라는 제한선이 지난해 깨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난항을 겪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는 이미 기후 위기의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해가 모두 최근 10년 내에 몰려 있는데, 이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어나는 추세라 앞으로 더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했다. 최근에는 미 기상·기후 감시 기관인 해양대기청(NOAA)에서 1300명의 인력을 해고했으며, 추가로 1000명을 더 감축할 계획이다.
오는 9월 각국이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를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2030 NDC를 지난 2021년에 발표했고, 올해 9월에 제출할 예정인 NDC는 이보다 늘어난 목표치를 제시해야 한다. 파리협약에서 정한 ‘진전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NDC를 발표할 때는 목표치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년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현재 공백으로 있는 2030~2050년까지의 정량적 감축 계획도 세워야 한다. 다만 미국의 협정 탈퇴로 탄소중립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WMO는 “이런 온난화 추세는 극심한 자연재해를 불러올 위험 신호”라고 경고했지만 “제한선이 깨졌다고 해서 인류의 목표 달성이 물거품 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울 사무총장은 “장기적인 온난화 억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 건 아니다”라며 “작년에 나타난 현상은 지구에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우리는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더 빨리 나아가야 한다”며 “전 세계 국가 중 절반만이 기후위기 관련 위험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를 더 빨리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며 기후 대응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슈테판 람스토르프 연구 부서장은 “수백만 명이 폭염·홍수·가뭄·폭풍·해수면 상승 등의 행태로 기후변화의 결과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만 온난화 추세를 멈출 수 있고, 이를 신속히 해야 한다”며 “현실을 무시하고 물리학 법칙을 부정하며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막는다면 그 대가는 결국 보통의 사람들이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이처 컨서번시(Nature Conservancy)의 루크 파슨스 박사는 “우리는 해마다 미지의 영역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으며, 2024년은 현대 인류 사회가 경험한 가장 뜨거운 해였다”며 “그러나 앞으로 10년은 더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돼, 기후변화는 전례 없는 기후 재해 속으로 우리를 더욱 밀어 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현재 ‘비정상적’ 재해로 분류되는 약 550건의 폭염·홍수·가뭄·산불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악화되거나 빈도가 잦아졌음이 밝혀졌다.
‘우려하는 과학자 연합(Union of Concernde Scientists)' 소속 브렌다 에크워젤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온라인에 게시된 기후 관련 정보를 삭제한 것에 대해 “대중에게서 기후 과학을 숨기려 해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우리가 피부로 느끼게 되는 일까지 막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보고서는 세계 지도자들이 상황에 부응해야 할 긴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환경 보호와 연방 재난 지원을 삭감하고 대중 건강을 화석연료 업계의 사익을 위해 희생하며, 전 세계 기후 지식의 근간이 되는 정부 기관을 무너뜨리는 것은 정반대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번 보고서는 지구가 점점 더 많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장기적인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함을 보여준다”며 “세계 지도자들은 새로운 NDC를 세우고 이행하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자국민에게 청정에너지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