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美, 자국 선박에 중국산 철강 사용 금지 방안 검토
“반덤핑 카드+국산 후판 사용 증가=철강업계 호재”
조선3사 중국산 후판 20% 사용...“반사이익 암초”
철강·조선업계 “정책 변동성 높아 좀 더 지켜봐야”
포항제철소 3후판 공장/포스코
포항제철소 3후판 공장/포스코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과 상선 건조 등에서 기회를 엿보는 국내 조선사들이 선박 제작에 쓰이는 중국산 후판 비중을 낮춰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철강업계는 최근 정부가 꺼내든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카드로 그동안 가중돼 온 고통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중국산 후판을 놓고 조선, 철강업계가 체감하는 기대 효과가 상반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미국 국적 선박에 중국산 후판이나 기자재를 못 쓰게 하거나 중국산 철강이 사용된 선박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중국산 철강 사용을 제재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중국산 철강 제재가 국내 조선업계의 중국산 후판 사용에 미칠 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중국산 후판에 기업별로 27.91~38.02%의 잠정 덤핑방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 잠정 덤핑방지 관세는 현재 기획재정부가 검토 중이며 최종 판정이 나오면 중국 철강기업별로 덤핑률이 적용돼 부과된다. 무역위의 이 같은 조치는 중국산 저가 후판의 대량 유입으로 인한 국내 철강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일종의 보호로 해석된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후판을 생산하는 국내 주요 철강 제조사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2020년대부터 중국산 후판은 국내 철강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며 국내 생산업체에 상당한 가격 압박을 가해 왔다.

지난해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37만9199톤(중후판 기준)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했으며 지난 2016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을 기록했다. 반면 국산 후판 판매량은 매년 뒷걸음질하고 있다. 취재 결과 지난해 국산 판매량은 약 570만톤으로 코로나19 이전 시기인 2019년과 비교해 144만톤 감소했다.

국내 시장에서 중국산 후판의 유통가격은 2월 말 기준으로 톤당 70만원대 중후반에 형성돼 있다. 반면 국산 후판 정품은 톤당 90만원 초반 수준이다. 후판 제조사 관계자는 “불공정거래 형태로 유입되는 중국산 저가 물량의 영향으로 국내 유통가격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철강업계에서는  덤핑방지 관세가 적용되면 단순 계산으로 중국산 후판 가격은 톤당 100만원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중국산 철강 제재 검토로 국내 조선업계의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 감소가 예상되면서 철강업계로서는 주 고객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구입할 확률이 높아져 후판 사업의 적자 폭이 줄어들 호재를 맞게 된다. 이와 연계해 일각에서는 ‘중국 견제’라는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 철강업계가 이른바 ‘트럼프 특수’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철강업계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냉소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12일부터 모든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를 발효했다”며 “국내 철강사들은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응하기 위해 품질향상과 제조원가 혁신 등 경쟁력 구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중국산 철강 및 후판 제재 검토로 인한 ‘트럼프 특수’는 현재 구체화된 것이 없어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가 섣부르다”며 “제재 가능성에 대한 인지는 하고 있지만 미국, 한국 정부와 같이 움직여야 하고, 철강 제조사별 이해관계도 얽혀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대로 된다 하더라도 따져봐야 할 요소가 많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HD한국조선해양

미·중 간 해운·조선 주도권 쟁탈전이 격화됨에 따라 국내 조선산업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예측은 연초부터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적 상선을 10년간 100척 수주할 수 있다는 계량화된 예상치도 나왔고 삼성중공업이 FLNG 수주전에서 ‘어부지리’로 이득을 보는 현실이 나타나기도 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그동안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산보다 저렴한 중국산 후판을 상당량 수입해 선박 건조에 사용해 왔다. 대형 조선3사는 전체 후판 사용량 중 중국산 비중이 약 20%, 중형 조선사는 50% 안팎이다. 후판은 선박 건조 원가의 20~30%를 차지해 조선사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선사가 국산 철강 사용을 늘리면 비용 부담은 커지게 된다.

미국발(發) 신조 발주 수요 예상으로 한껏 부풀어 있는 국내 조선업계에 중국산 후판 사용 규제 검토 소식은 ‘트럼프 특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선박 수주 과정에 있어 배를 발주하는 선주가 후판의 원산지 비중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조선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건조한다. 조선업체가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맞춰 선제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더라도 선주에 후판 원산지 변경 등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기가 힘든 구조다. 이는 선주측에서 먼저 중국산 후판 대신 한국산을 사용하겠다고 요청해 오지 않는 이상 조선소의 원가 절감 대책은 공염불이 된다는 것과 다름 없다는게 조선업계의 중론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현업은 물론 전략, 기획, 자재원가팀에서 중국산 후판 규제 검토를 포함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의 정책 변동성이 큰 만큼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후판 원산지 변경 등 생산 원가 절감 방안을 마련하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현재로선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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