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폐막일 넘기며 합의했지만 개도국 ‘반발’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 ‘반쪽 합의’로 막 내려
전문가들 “기후회의 전체 시스템 망가져” 지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실패로 보긴 어려워”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CI. / 사진=COP29 홈페이지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CI. / 사진=COP29 홈페이지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국제사회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등 다양한 회의를 개최해 해결 방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고 있다. 기후활동가들이 글로벌 회담을 ‘말뿐’이라고 비판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문제가 다자간 환경 협력 체계를 무너뜨렸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17일(현지시간) 20명 이상의 전문가를 인터뷰한 결과, 전문가들이 유엔 기후정상회의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비효율적인 합의 절차 ▲화석연료 산업 로비스트들의 강력한 영향력 ▲급변하는 국제 정세 ▲환경 문제의 방대함 때문에 다자간 환경 협력이 사실상 무너졌다고 말했다.

진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 부문에서 조금의 성과가 있지만, 유엔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그 속도가 너무 느리고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콜롬비아 칼리에서 개최된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는 시간이 부족해 ‘반쪽 합의’로 끝났다. 뒤이어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개도국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그 규모가 너무 작아 개도국 협상 담당자들은 실망했고, 전문가들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부산에서 열린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 역시 많은 국가가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외쳤지만,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추후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요한 록스트림 소장은 “2024년에 열린 4개 다자간 회의를 종합해보면, 우리는 여전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9년 전, 190개국 이상이 함께 파리협정을 채택했을 당시만 해도 건강한 지구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이제 우리는 그 길에서 벗어났다”며 “지금 우리는 마치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싸우고 대립하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이 같은 자세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후회의의 전체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지적했다.

후안 카를로스 몬테레이 파나마 수석 기후 협상가는 올해 열린 4번의 회의에 모두 참석한 뒤 “전체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지적했다. 리야드에서 열린 사막화 회의 현장에서 그는 “국가와 정부를 넘어 인류 전체가 길을 잃은 것 같다”며 “이제 더 이상 서로 협력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몬테레이 협상가는 “파나마처럼 일부 국가들은 환경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소규모 그룹으로 협력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부 작은 나라들은 ‘기후 클럽’이라는 개념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가 아닌 일부 국가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더 엘더스의 회원이자 전 아일랜드 대통령인 메리 로빈슨은 “유엔 시스템은 최악”이라며 “하지만 이것보다 나은 시스템이 없고 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순 없다”고 일침을 놨다.

합의제 의사결정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기후 협상가 조애나 디플레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화석연료 산업의 주요 로비스트들이 다수결 혹은 3분의 2 찬성 같은 방식은 강하게 반대하고, 합의제를 도입하도록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합의제는 다수의 국가가 동의해야만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디플레지는 “그들은 로비 등의 방식을 통해 대부분의 협상을 지연시키고 약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파워 시프트 아프리카(Power Shift Africa)의 모하메드 아도우는 “합의제로 결정하면 결국 가장 늦게 결정을 내리는 국가의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엘 고어 전 부통령과 디플레지 등은 COP 결정을 합의제가 아닌 다수결로 해야 한다며 새로운 규칙 도입을 주장했지만, 도입에는 실패했다.

빠르게 변하는 국제 정세도 실효성에 의문을 더했다.

프리스턴대학 기후과학자이자 국제관계학 교수인 마이클 오펜하이머는 “1980년대에는 2개의 초강대국이 존재했고, 이들 사이에 충분한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어 서로 협력하며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훨씬 더 분열됐고, 권력도 훨씬 더 다양화됐다”며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피게레스 전 사무총장은 “다양한 문제가 산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경제 전반이 COP에서 어떤 것이 합의되든 상관없이 자국 내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인 사이먼 스틸 역시 “유엔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지구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섭씨 5도까지 상승했을 것”이라며 “이는 대부분의 인류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 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COP 합의 과정이야말로 작은 나라들과 개발도상국들이 강대국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올해 회담을 완전한 실패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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