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선진국 분담금, 진통 끝 합의...구체적 재원 조달 방법 無
개도국, “금액 너무 적고 2035년 너무 늦어” 비판...합의 이행될지도 ‘의문’
트럼프의 재집권이 합의에 영향 미쳤다는 분석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진통 끝에 NCQG에 합의했다. 선진국은 2035년까지 연간 최소 3000억달러(약 421조원)를 부담하고, 공공·민간 재원을 통해 개도국에 대한 재정을 2035년까지 1조3000억달러(약 1820조원)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지만, 개도국은 최소 3000억달러는 너무 적고 2035년까지는 너무 늦다고 비판했다. / 사진=COP29 공식 X 갈무리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진통 끝에 NCQG에 합의했다. 선진국은 2035년까지 연간 최소 3000억달러(약 421조원)를 부담하고, 공공·민간 재원을 통해 개도국에 대한 재정을 2035년까지 1조3000억달러(약 1820조원)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지만, 개도국은 최소 3000억달러는 너무 적고 2035년까지는 너무 늦다고 비판했다. / 사진=COP29 공식 X 갈무리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됐던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24일 새벽 폐막했다. 198개 당사국은 이번 총회에서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합의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AP통신 등 복수의 외신은 COP29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견해차로 진통을 겪은 끝에 NCQG에 최종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이 공개한 합의문에 따르면, 개도국을 위해 선진국이 부담하는 공공재정을 2035년까지 연간 3000억달러(약 421조원)로 3배 늘렸다. 또 모든 당사자가 협력해 공공·민간 재원을 통해 개도국에 대한 재정을 2035년까지 1조3000억달러(약 1820조원)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은 명시하지 않았다.

선진국 분담금은 지난 21일 공개된 합의문 초안의 2500억달러(약 350조원)에서 500억달러 증가한 금액이다. 합의된 분담금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군사비의 45일치,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원유의 40일치와 맞먹는 금액이다. 이 돈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국가들의 공공·민간 부문에 걸쳐 매년 현금으로 지원돼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하고, 앞으로의 대응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이는 2020년까지 빈곤국에 연 1000억달러(약 140조원)의 기후재원을 제공한다는 이전 합의를 대체하는 성격이다. 지난 2009년 설정된 이 목표는 애초 기한을 넘긴 2022년에야 이행됐으며, 2025년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회의에서는 중국·사우디아라비아 등 신흥 경제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편입해 기후 재원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안건도 나왔지만, 불발됐다. 대신 중국 등의 기여를 ‘장려한다’는 표현을 합의문에 담았다.

이번 총회는 분담금을 사이에 둔 선진국과 개도국의 ‘줄다리기’로 인해 예정됐던 폐막일을 넘겼고, 협상단은 비공개회의와 밤샘 협상을 거듭한 끝에 예정 시각 30여 시간을 넘겨 이날 새벽 합의에 성공했다.

기후변화 위협에 직접 노출된 소규모 도서국들과 최빈국(LDC) 그룹은 초안 공개 당시 선진국의 부담이 지나치게 적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한때 회의 참석을 중단해 파행 우려까지 나왔지만, 합의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일부 대표단은 기립박수로 이를 반겼지만, 개도국의 반발도 여전하다.

인도 협상 대표 탄드니 라이나는 합의안에 대해 “선진국이 그들의 책임을 다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결과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안을 ‘시각적 환상’이라 칭하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금액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개도국이 실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는 지적이다.

아프리카 협상그룹을 대표하는 케냐의 알리 모하메드는 “아프리카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것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고, 파나마 기후 특사 후안 카를로스 모테레이도 “과정은 혼란스럽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으며, 합의안은 필요를 달성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외에도 볼리비아, 나이지리아, 피지 등 개도국 대표들의 비판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그린피스도 성명에서 “COP29가 3000억달러(약 421조원)의 새 공공 기후 재정 목표에 대한 ‘최소한’의 합으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트레이시 카터 그린피스 기후정치 전문가는 “엄청난 실망”이라며 “2035년까지 3000억달러는 너무 적고, 너무 늦다”고 비판했다.

기후 활동가들도 합의안을 비난하고 있다. 브라질 비정부기구인 기후관측소의 클라우디오 안젤로는 “선진국들은 150년 동안 세계 대기를 점유하고 33년 동안 기후 행동을 방관했다”며 “이들이 무능한 COP 의장단의 도움을 받아 곧 출범할 트럼프 정부를 위협으로 활용해 개도국에 합의를 강요했다”고 비난했다.

싱크탱크 ‘파워시프트아프리카’의 모하메드 아도 케냐 국장은 “이번 COP는 개도국에 재앙”이라며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부유국들이 배신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아쉬움을 표명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큰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재정과 완화 측면에서 더 야심 찬 결과를 기대했다”며 “각국 정부가 이번 합의를 토대로 더 발전시켜 나가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역사적인 결과물’,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어떤 사람들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청정에너지 혁명을 부정하거나 지연시키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뒤집을 수 없다”며 “미국은 더 건강한 지구를 위한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줄다리기 끝에 합의에 이르렀지만, 문제는 합의가 이행되느냐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57Gt(기가톤)까지 치솟는 등 기후변화의 위험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비롯해 각국 정치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변화를 불신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기후변화 대응을 ‘그린 뉴 스캠(기후 사기, Green new Scam)'이라 칭하며 세계 기후협력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취임 첫날 파리협정 재탈퇴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고, 기후변화 대응 반대론자로 유명한 크리스 라이터 리버티 에너지 최고경영자(CEO)를 차기 미 에너지 장관으로 지명해 기후 위기 대응에 어려움을 예고했다.

트럼프가 미 정부 지출 삭감 책임자로 임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미국의 기후 재정 삭감 가능성을 언급해 우려를 더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합의안을 두고 “법적 구속력은 없고 주로 외교적 압력에 의해 운영되는 합의”라며 취약성을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예산 제약, 포퓰리즘 증가 등 많은 재정적·정치적 제약에 시달리고 있다”며 특히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과 파리협정 탈퇴 위협은 이번 회의 초반부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기후솔루션은 COP29에 대한 논평에서 “3000억달러라는 규모는 이전 누적 온실가스 배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기후 위기의 원인 제공자라 할 선진국의 책임에 견줬을 때 부족한 액수이고, 이미 닥쳐온 기후 재난의 양상을 봤을 때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며 “전반적으로 이번 총회는 기후재원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정도에 그쳤지, 자금을 어떻게 조성하고 제공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는 없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번 합의는 최선의 기후 대응을 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원장은 COP29 현장 분위기에 대해 “지난해와 달리 부대 행사 참여가 저조했다”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같은 기간에 열려 국가 원수들이 COP29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한스경제'에 밝혔다.

NCQG 합의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합의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원장은 “이번 합의를 시작으로 향후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우선 지원받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등 이를 더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뇌관에 대한 우려 속에 이제 시선은 COP30으로 쏠린다. 다음 회의는 내년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개최된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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